[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허준영 서강대학교 교수가 한국은행 경제분석 분석보고서를 통해 추경의 이점을 과도하게(?) 설파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허 교수는 "정부지출 1원 증가는 당기 GDP를 1.45원 증가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소개했다.
이는 현 시점 한국경제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던 추경이나 정부지출의 효과와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정부가 돈을 풀면 경기가 대폭 좋아지고 부작용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허 교수의 논지는 좋은 '논리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허 교수의 정치적 편향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왜 한국의 중앙은행이 허준영과 경제학자인 체 하고 싶어하는 아무추어에게 지면을 내줬느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 허준영 VS 이창용
추경이 한국경제 성장률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을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그런데 허 교수가 1배가 훌쩍 넘는 재정지출 효과를 거론하자 사람들은 '생각과 많이 다르다'면서 그의 주장에 주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의 지면'을 빌린 그 보고서를 이창용 한은 총재가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허 교수의 추경 효과 주장은 과장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경제학 박사인 필자의 한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요즘도 재정지출을 하면 그 멀티플라이어 1.5배가 나온다고요? 그럼 왜 한국이 이 모양인가요? 허 교수라는 사람은 경제학자가 아니고 필시 누군가의 목적을 대변하기 위해 쓰이는 말(馬)일 겁니다."
글로벌하게는 한국 출신 경제학자 중 신현송 BIS 국장과 더불어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 이창용 한은 총재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통위 당일 허 교수의 주장을 단번에 부인해 버렸다.
이 총재는 지난 17일 금통위에서 "한국은행 보고서로 최근에 재정지출의 멀티플라이어가 1.45다, 이런 게 나와서 굉장히 곤혹스럽다"고 했다.
이 총재는 "경제분석에 나온 그 논문은 서강대학교의 연구진이 발표한 내용인데, 한국은행 견해하고는 무관하게 학자들이 갖고 있는 여러 견해 중의 하나"라며 "우리는 거기서 나온 숫자 1.45는 너무 높지 않나 이렇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는 멀티플라이어가 0.4∼0.5 정도 되는 것이 가장 경험적으로 맞다고 본다"면서 "만약 추경을 12조원 하게 되면 경제성장률의 효과는 그 멀티플라이어를 적용하면 한 0.1%포인트 정도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재정지출의 승수효과를 둘러싸고 최근 '한은 보고서'와 '한은 총재'의 견해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아울러 총재 말대로 승수효과가 그렇게 크게 나오기는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다.
■ 한 경제학 교수의 놀라운 '재정효과' 주장
경제학이나 각종 문과 학문들이 별로 쓸모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허준영 교수의 주장은 통상적인 인식과 남달랐다.
한은이 10조원을 써도 겨우 0.1%p 올리는 데 그칠 것이라고 본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허 교수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적극적인 재정을 통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게 낫다.
하지만 필자는 이렇게 정부지출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별로 본 적이 없다.
작년말 계엄 사태 이후 이창용 한은 총재가 15조∼20조원 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정도의 돈을 쓸 때 기대할 수 있는 성장률 제고 효과는 0.2%p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의 '한은 보고서'에서 재정지출의 유용성을 강변한 허 교수가 혹시 딴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 일각에선 허 교수의 주장을 최대한 이용해 먹었다.
비록 한은 총재가 논문을 '기각'(?)하긴 했지만, 민주당은 '한국은행의 이름'을 빌려서 쓴 추경의 효과에 대한 주장을 잘 이용했다.
민주당 정책가들은 이 논문까지 끌어들여서 "지역화폐가 경기 활성화에 가장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경의 성장률 뒷받침 효과는 제한적이고 상품권의 일종인 지역화폐는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적은 정책이라는 건 경제학을 제법 공부한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필자로선 한국을 대표하는, 그리고 한국에서 인기가 가장 좋은 정당인 민주당이 왜 이리도 지역화폐에 집착하는 것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 경제학자의 양심, 혹시라도 정치 편향으로 수치가 오염됐다면...
필자의 한 지인은 허준영 교수가 재정지출 효과를 과장(?)한 것과 관련한 정치적 이해득실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는 "허 교수를 개인적으로 안다. 지금 특정 정당 쪽에 일을 봐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혹시 정치적 성향 때문에 수치를 과도하게 높인 것 아닌지 궁금해 했다.
이 지인은 경제학자가 그런 수치를 내놓은 것은 스스로도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필자도 허 교수 말 대로 1억원 집어넣으면 1억 5천만원의 효과를 보는 식의 재정지출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굳이 복잡한 수학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현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효과를 내는 정부지출을 한국경제에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 것이다. 한국경제 모멘텀이 둔화된 뒤 한국은행은 꽤 오래 전부터 한국의 재정승수가 1에 못 미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허 교수의 남다른 견해는 한국경제에 희망을 준다.
그런데 학자와 교수로서의 순수한 분석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만에 하나' 정치적 이득에 눈 멀어 그런 주장을 편 것이라면 이는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 입맛에 맞는 특수한 주장, 이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나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웃라이어 값이더라도 전문가의 외피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수치라면 설득을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 역시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다.
지금 대규모 추경을 원하는 정책가라면 당연히 재정지출의 효과를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때 마침 민주당의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이 허 교수의 주장을 차용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
이날 아침에도 진 의원은 이런 주장을 펼쳤다.
"추경 12.2조원은 이러한 우리 경제를 지탱하기에 ‘새 발의 피’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조 추경의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0.1%p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30조원을 집행할 때 우리 경제 성장률이 0.9%p 상승한다는 예측이 있는 연구결과도 나옵니다. 따라서 추경의 과감한 증액은 필수입니다."
여기서 '따라서 과감한 증액이 필수'라는 근거는 한은의 주장이 아니라 '어떤 연구결과'다. 입맛에 맞는 주장만 차용한 것이다. 진 의원의 이런 삼단논법은 논리학 시험에선 0점으로 처리된다.
"효과가 입증된 지역화폐 발행지원 예산부터 최소 1조원을 편성해야 합니다. 내란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소상공인 손실보상도 3조 5천억 원 정도는 집행해야 합니다. 항공참사로 지역경제가 멈춰버린 무안 등 전남지역에 경기부양책도 절실합니다. 영세 소상공인 영업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한 크레딧도 월 평균 고정비용 수준인 100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효과가 입증된' 지역화폐라는 말엔 동의하는 경제학자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이나 물건으로 사용처를 제한한 상품권일 뿐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낮은 방식이다. 아무리 정치적 이득이 급하지만 사실을 왜곡해선 안된다.
물론 '경제학 혹은 경제학자의 전망'이란 게 상당히 허약하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틀을 벗어난 주장은 뭔가 오해를 살 수 있다. 여러 가능성을 고려한 한은 이코노미스트의 '드라이한' 평가는 이랬다.
"승수를 1중반으로 보거나 1년 이상의 누적 효과를 얘기하면서 추경의 효과가 크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국은행은 재정승수를 0.5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보다 좀더 크게 보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요."
또 추경은 단순히 규모 뿐만 아니라 돈을 어떤 식으로 돈을 쓰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재정승수가 경기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면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들도 하고 또 서울보다는 지방 쪽에 좀더 잘 먹힌다는 분석도 있긴 합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