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3-15 (토)

(장태민 칼럼) 상법개정안, 투자자와 기업가의 정반대 시선...그리고 대한상의 설문

  • 입력 2025-03-14 15:1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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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예고한 대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요청할 계획이다.

금융시장에선 상당수 투자자들이 '이사의 충실의무'가 법에 명시되면 소액주주 권익이 보호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반대한다.

기업들은 상법에 ‘주주 충실 의무’를 넣으면 소액주주 소송 남발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투기자본에 의한 공격 노출을 우려한다.

기업들은 안 그래도 경영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가 상승' 혹은 '주주 권익 확대'란 명목을 내세울 만큼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 일반 주주 무시 행태, 바뀌어야 하는 건 맞는데...

한국 기업들의 소액 주주 무시 관행은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오랜기간 '국장' 투자자들은 쓴 입맛을 다시면서 미리 '미장'으로 옮겨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미국 경영자들은 주주 친화 경영을 하는데, 한국은 언제까지나 주주들 엿이나 먹이는 경영을 하느냐는 거친 말을 투자자들도 많다.

한국은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서 전권을 휘두르고 실적이 나빠도 갈리지 않기 때문에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들도 부지기수다.

대주주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주가 부양에 신경을 안 쓰고 나아가 중복 상장, 계열사 합병 등으로 피해를 입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비판도 많다.

우리도 이제 '주주 눈치 보는' 경영으로 바뀌어야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자들에겐 최근까지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논란 같은 일이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LG화학의 LG엔솔 쪼개기 상장, 카카오 계열사 중복 상장 등도 유명한 사례다.

따라서 상법에 '주주 이익'을 명시하면 '지배' 주주가 '일반' 주주를 대놓고 무시하는 일을 벌이긴 어려워진다.

이 법안으로 한국도 미국의 '피듀셔리 듀티'처럼 주주에 대한 의무가 강화되면서 건전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 열리고 기업들의 혁신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보인다.

또 이사회가 대주주의 이익에만 복무하지 않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진정으로 고려하게 되면 자본시장이 보다 투명해지고 자본 조달도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 역시 쉽게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에선 상법 개정을 반기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본부장은 "상법 개정은 내국인 투자자, 외국인 투자자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일반주주들을 무시하는 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기업하는 입장에선 거수기 역할만 하던 사외이사 등을 지배주주가 마음대로 못하게 하니 신경이 쓰이고 소송도 당연히 늘어날 것"이라며 "하지만 그래도 이는 가야할 길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반대 논리, 그리고 한국기업들의 '반대'

하지만 자칫 전체 주주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좋은 명분이 회사를 더욱 어렵게 해 결과적으로 주가 상승이라는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낙과(落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런 주장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나온다.

상법 개정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켜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즉 '단기적' 이익을 바라는 일반 주주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혁신에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에선 '기업 혁신의 계기'를 언급하고 있지만, 기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기업 혁신 저해'를 우려하는 전혀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셈이다.

특히 각종 소송 등으로 기업 경영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외국 자본의 경영 간섭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걱정 역시 많다.

또 훈수꾼이 늘어나면 비상장기업들이 기업 공개를 더욱 꺼리게 만들 것이라고 견해들도 보인다.

금융시장의 상당수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이런 논리를 '궁색한 방어논리'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실제 기업들의 경계감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의 한 간부 직원은 "주주들의 경영 관여를 선진화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기업 입장에선 경영을 모르는 사람들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이 보통 심각한 일은 아니다"라며 "냉정하게 상법 개정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은 많은 한국 상장기업들이 '무서운' 행동주의 펀드 등을 우려한는 것 역시 사실이다.

기업 쪽에선 과연 주주의 이익 확대 명분으로 한국 기업들의 발을 묶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대한상의 기업들 조사를 보면...'주주 행동주의' 뜨악한 시선으로 보는 중

주주 행동주의에는 명과 암이 있다.

주주 행동을 통해 경영자들이 기업 가치를 높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단기 이익이나 배당 등만 강요해 기업이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경영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최근 대한상의가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주행동주의 확대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기업들의 시선이 투자자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한상의는 이달 10일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우려 등으로 '상법 개정안' 반대를 위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우선 설문에 참여한 상장기업의 40.0%인 120개사가 최근 1년간 주주들로부터 주주관여(Engagement)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미 한국 상장기업들의 상당수가 주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그 비중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주주관여는 경영진과의 대화, 주주서한(letter), 주주제안 등 기업 경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의미한다.

최근엔 기관투자자 뿐만 아니라 '힘을 결집한' 개미 투자자들도 주주 행동을 위해 세를 모으는 일이 적지 않았다.

사실 점점 기업이 대놓고 소액주주들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돼 가고 있다.

상의 조사를 보면 주주관여 사실이 있다고 응답한 120개 상장사 중 주주관여의 주체를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라고 답변한 기업은 91%에 달했다. 설문이 복수답변을 허용한 가운데 연기금 29.2%, 사모펀드 및 행동주의펀드 19.2%, 기타 2.5% 등이 뒤를 이었다.

주주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모습은 공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DART 전자공시시스템 분석 결과 전체 주주제안 주체 중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 비중은 2015년 27.1%에서 2024년 50.7%로 지난 10년 사이 2배 늘어났다.

주주 관여 활동은 △배당확대(61.7%), △ 자사주 매입‧소각(47.5%), △ 임원의 선임과 해임(19.2%), △ 집중투표제 도입 등 정관변경(14.2%), △ 기타(10.8%) 순이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 요구가 늘어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대한상의는 "2000년대 초 해외 사모펀드에서 시작된 국내 주주행동주의가 2010년대 중반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를 거쳐 최근 온라인 플랫폼 발달과 밸류업 정책과 맞물리며 소액주주로 주도권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상의는 다만 "소액주주들의 요구사항은 주로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단기적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투자 및 R&D 차질 우려 등 기업들의 중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과거엔 주로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했지만 최근엔 소액주주연대가 최대주주 수준의 지분을 확보한 뒤 M&A나 최대주주의 사내 이사직 해임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단 상의 조사에선 상장사 83.3%가 상법 개정 시 주주관여 활동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의는 사실 기업들의 기익단체인 만큼 기업의 편을 들 수밖에 없기도 하다.

상의는 "상법 개정으로 주주들이 충실의무 규정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근거로 인식해 과도한 주주활동이 전개될까 다수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현행 상법체계 내에서도 주주제안 및 대표소송을 통해 충분히 주주의 권익이 보장되는 만큼 이사의 책임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주행동 확대의 '악영향'과 관련해 기업들은 이사-주주간 갈등 증가(41%), 대규모 투자·R&D 차질(25%) 등을 언급했다.

상법 개정에 따른 긍정, 부정의 효과가 모두 있을 수 있으나 기업들은 70% 가까이가 부정적인 입장인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경영 효율성 및 투명성 향상' 답변은 31%에 그쳤다.

한편 그 동안 한국의 경우 '경영권 방어장치'가 약해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많았다.

따라서 기업들 쪽에선 상법 논란과 관련해 경영 안정을 위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 역시 제시하고 있다.

과도하게 배당을 요구해 기업 투자를 방해하는 일이나 해외투기 자본 등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 등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상의 조사에선 주주행동주의 대응을 위한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는 ▲배당금 확대 및 자사주 매입·소각에 대한 명확한 한계 설정(27.3%), ▲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25.3%),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상법 개정에 신중(23.7%), ▲상법 시행령 개정 등 주주제안의 거부사유 확대 및 강화(22.0%) 등이 제시됐다.

이번 상법 논란과 관련해 기업과 투자자는 서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업들은 일반 주주의 합리적 요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화로 임해야 한다. 일반 주주를 귀찮은 존재로 봐선 안 된다.

아울러 주주 환원의 걸림돌이 되는 상생 협력 세제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결국 제도 '운영의 묘'도 중요해 보인다.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한국 기업들의 모임인 대한상의는 비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상법 개정을 원하는 상당수 투자자들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폈다.

"그간 주주 관여는 행동주의펀드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소액주주가 주주행동주의 전면에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현재 논의 중인 상법개정안은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해 주주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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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대한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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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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