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메리츠증권은 11일 "비트코인이 달러를 지키는 역학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연 연구원은 "트럼프의 비트코인 전략자산화는 달러 발권량을 줄임으로써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이같이 내다봤다.
트럼프는 과거 암호자산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스탠스가 바뀌었다.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후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선 전까지 형성되었던 54k~72k 달러 박스권을 상향돌파하더니, 12월 5일에는 100k 달러를 일시적으로 넘었다.
비트코인은 대표적인 트럼프 트레이드 자산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대상 자산인 미국채 금리와 달러인덱스가 12월 들어 되돌려지는 것과 달리, 지금까지도 상승세를 유지했다.
■ 트럼프, 비트코인의 구세주 되다
트럼프가 처음부터 암호화폐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7월 트럼프는 트위터에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며 비트코인의 가격은 변동성이 매우 심하고 기반이 없다"(Bitcoin is "not money" and that its value is "highly volatile and based on thin air")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갑작스럽게 스탠스를 바꿨다.
특히 전략적인 비트코인 비축 계획을 발표하고, SEC 의장으로 친(親)암호화폐 인사 폴 앳킨스를 지명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연구원은 "트럼프의 입장 변화는 아이러니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그가, 미국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체제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암호화폐를 지지하는 셈이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암호화폐를 금융시장 제도 안으로 편입하려고 한 데에는, 암호화폐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 비트코인과 금, 그리고 달러
비트코인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새로운 화폐로 보기는 애매하다.
화폐는 1) 교환의 매개수단(Medium of Exchange), 2) 가치저장의 수단(Store of Value), 3) 가치척도의 단위(Unit of Account)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그러나 현실 거래에는 원활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어 일반적인 화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투자자산으로 바라보자니 내재가치가 없다. 비트코인을 보유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가치는 시장가치 변동분뿐이다.
주식, 채권, 원자재와 달리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다는 점은 명목화폐와 비슷한 특징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일반적으로 금, 달러와 동시에 비교된다.
박 연구원은 "비트코인은 금과 더 유사하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1) 제한된 공급량과 2) 탈중앙화된 자산이라는 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달러의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맞춰 공급이 조절되고, 중앙은행이 화폐의 가치를 보장한다.
지난 12월 4일 파월 연준 의장은 "비트코인은 금의 경쟁자지, 달러의 경쟁자가 아니다"(It’s not a competitor for the dollar, it’s really a competitor for gold)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연구원은 "비트코인과 금은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요에 따른 가격변동성 확대가 일어난다. 반면 달러는 공급을 중앙은행이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며 "가치가 쉽게 변하지 않아야 교환 매개체로 기능이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을 일반적인 화폐로 보기는 더욱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결국 비트코인은 화폐와 금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는 새로운 자산군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암호화폐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화폐 체제가 붕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비트코인의 내재가치가 없다고 해서 화폐의 기본적인 기능을 충족시키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실용적"이라고 밝혔다.
■ 트리핀의 딜레마
박 연구원은 "이러한 새로운 자산군이 달러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를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리핀의 딜레마란 국제 통화 시스템에서 기축통화인 달러가 마주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의미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상적자가 누적된다. 대내로 들어오는 유동성보다 대외로 나가는 유동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 경상흑자를 위해 달러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유동성이 부족해지게 되고, 이는 전 세계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경상적자가 지속되면 공급이 늘어난 결과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 즉 달러 유동성
이 충분히 공급되는 동시에 달러 가치가 높아지기는 어렵다.
박 연구원은 "글로벌 GDP 대비 미국 비중이 줄어드는 데 반해 외환거래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다"면서 "글로벌 GDP에서의 미국 비중은 2001년 최고 수준인 31.2%에서 2023년 현재 26.2%까지 하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반면 달러 결제비중은 여전히 88%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적자 국가가 됐다"면서 "트리핀의 딜레마가 현실화된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럼에도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달러 유동성 공급을 줄여 화폐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며 "그 방법으로 트럼프 1기에는 경상흑자를 유도했고, 이번 트럼프 2기에는 비트코인을 금융시장 체제 안에 포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 비트코인은 달러의 보완재
박 연구원은 "비트코인으로 트리핀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치저장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탈중앙화된 가치저장 수단이라는 특성이 그러하다고 했다.
지금의 금처럼 국가별 보유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실제로 12월 7일, 미국 금융안정위원회는 비트코인을 금과 같은 가치저장수단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각 국가의 전략적 자산에 비트코인이 포함되면 미국이 달러 발권 없이 유동성이 늘어날 수 있다"며 "기존에 달러로 보유하던 자산의 일부가 비트코인으로 대체되며 시장에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올해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수가 금 가격 상승의 한 원인이었던 것처럼 비트코인의 시장 가치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달러의 화폐가치는 보존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친암호화폐 정책들은 네트워크 효과를 자극해 비트코인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밝혓다.
네트워크 효과란 어떤 재화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그 재화를 수요하는 다른 소비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효과를 의미한다. 즉 더 많은 사람들이 수요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셈이다.
그는 "비트코인은 내재가치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간의 수요와 합의가 가격 형성에 더욱 중요하다"면서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이를 자극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트럼프 당선자가 언급한 정책들은 비트코인 자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한편, 규제 완화를 통해 산업 발전을 촉진한다"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추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 달러인덱스와 비트코인을 별도의 자산으로 구분하고, 상관관계보다는 정책 변화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