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4년 11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모습
(장태민 칼럼) 전 부총재가 보는 현 부총재의 소수의견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목요일(11월 28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4:2로 동결된 뒤 소수의견과 관련한 뒷말이 많았다.
금리 결정 자체가 금융시장 다수의 예상에서 벗어난 결과였던 데다 한은 집행부의 상징인 부총재가 소수 의견자로 이름을 남겼기 때문이다.
유상대·장용성 금통위원이 동결을 주장한 가운데 무엇보다 한은 집행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부총재가 동결을 주장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부총재의 소수의견은 2004년 11월 '금통위의 반란' 사건 이후 처음으로 나온 일이었다.
■ 총재의 '부총재 소수의견'에 대한 헷갈리는 설명
총재와 함께 당연직 금통위원인 부총재의 의견은 한은 집행부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총재-부총재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번 금리인하는 4대 3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금통위 기자회견장에서 이창용 총재는 이 문제를 '애매하게' 설명했다. 우선 과거의 잣대로 억측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창용 총재의 장황한 설명을 거의 그대로 실으면 이렇다.
"저희가 시장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과 관련해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하고, 또 제가 총재로 온 다음에 좀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과거 패턴을 통해서 지금 현재를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소수의견도, 특히 이번 결정에 있어서는 금리를 낮추고 높이는 것이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금통위원들에게 저희 집행부 입장에서는 장단점을 말씀드렸고요. 그 안에서 금통위원들이 본인의 의견대로 결정을, 항상 그렇지만 특히 더 그렇게 하셨고 저는 유상대 부총재도 이번에도 본인의 의견대로 의견을 제시해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집행부 의견을 바꿨다 이렇게 안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총재, 부총재 의견이 항상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번에 의견이 달랐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화법을 구사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저는 유상대 부총재가 금통위에 참석하는 것은 금통위원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항상 총재 의견과 부총재 의견이 같은 방향(은 아니지만), 이번에 의견이 달랐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저희가 보통 많은 공감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그런 생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생각이 달랐던 건 전혀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 2024년 11월 금통위, 20년 전 11월의 '사건' 끄집어내
유상대 부총재의 '소수의견'은 한은의 권력구도를 연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채권시장에 오래 전부터 종사했던 사람들에게 2004년의 기억을 소환하도록 만들었다.
2004년 11월 당시 이성태 한은 부총재는 5명의 금리 인하 주장에 맞서 혼자 동결 소수의견을 냈다. 당시 콜 금리는 3.5%에서 3.25%로 인하됐다.
박승 총재-이성태 부총재로 대변되는 '동결 세력'을 5명의 금통위원이 똘똘 뭉쳐 제압해버린 사건이다.
당시엔 '저금리론자'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금리 인하를 원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은 외부에서 들어온 금통위원들이 힘을 합쳐 정부의 의지를 관철시킨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한은 집행부는 금리 동결을 원했지만, 정부의 사주(?)를 받은 금통위원들이 이를 뒤집어 '금통위의 반란'으로 오랜기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박승 총재는 그 전 10월의 구설수로 조롱(?)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4년 10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박승 총재는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금융시장에 대해 '채권시장이 철이 없다'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금통위 때 박승 총재는 "채권시장을 한은이 따라 갈 수 없다. 재경부 말만 믿고 베팅을 했다가 한 두 번 손해를 봐야 '내가 철이 없구나'하고 반성하며 훈련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승 총재의 이 발언은 결국 실언이 되고 말았다. 그 시절의 일은 '철없는 시장'이 중앙은행을 꺾은 씁쓸한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후 박승 총재의 화법은 후임 중앙은행 총재들이 사용해선 안 되는 기술(반면교사)로 거론되기도 했다.
■ 장병화 전 부총재가 보는...'20년만의 사건'
과거 한국은행 부총재를 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볼까.
장병화 전 한국은행 부총재(2014년 6월~2017년 6월)의 의견을 구해보기로 했다.
장 전 부총재는 우선 두 가지 가능성들을 제시했다.
"제 생각엔 총재나 부총재의 뜻이 있는데, 다른 금통위원들의 컨센서스를 못 끌어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총재는 표결을 하더라도 4:3이니 안 하는 게 맞고요. 두번째, 총재가 결정을 안 하고 위원들 다수 의견에 맡겨보자, 이렇게 방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이 경우는 강한 설득을 하지 않는 방식이죠."
총재, 부총재가 발 벗고 나서면 되는데(한은 집행부 의견 관철), 이번엔 발 벗고 나서는 강도가 덜 했던 것 아닌가 하고 추론했다.
"부총재는 일단 집행부, 임직원들과 의견이 같았을 것인데, 총재의 생각은 또 반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집행부 쪽을 강하게 서포트 안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총재, 부총재의 의견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금통위원 중엔 오랜 기간 한은에서 일을 한 김종화 위원이 있다. 뭔가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하고 추론했다.
"(한은 출신인) 김종화 금통위원이 굳이 집행부 의견과 반대되는 보팅을 했다고 보기도 좀...총재, 부총재, 김종화 위원 간의 상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김종화 위원이 총재, 부총재 뜻에 반해서 주장을 할 것 같지는 않은 느낌도 듭니다."
금통위원 중엔 이창용 총재의 애제자로 알려진 이수형 위원도 있다. 박승 총재 식으로 얘기하면 대학원생들(박 전 총재는 금통위원을 이렇게 취급한다는 평가도 들었다)의 의견 대로 가 보자고 마음 먹었을 수도 있다.
또 총재, 부총재 등이 일부러 이런 구도를 만들어 시장의 기대감을 관리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부총재를 소수의견(동결) 쪽에 배치해 금리인하 기대감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5:1 인하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지나치게 커질 우려 등이 있는 만큼 4:2를 통해 적절히 기대감을 통제하길 원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 장 전 부총재는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있었어도 그랬을 수도 있었을 같다"고 했다.
장 전 부총재는 다만 세월이 흐른 만큼 금통위 (의사결정 방식 등) 구도가 과거와 같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