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기재부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예산심사기간에 나온 연초 추경 얘기...채권시장, 대통령실 시와 때 못 가린다고 비판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22일 아침 대통령실이 '추경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금융시장에선 세수 부족에 따른 나라살림의 어려움이 거론되고 있다.
또 예산심사기간에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재정 운영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채권시장은 내년 20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국채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연초부터 추경이 이뤄진다면 수급 충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긴장하기도 했다.
■ 11월에 나온 대통령실의 추경 얘기...'원칙도 없고 어이없다'
이날 아침 개장전 조선일보는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내년도 예산안과 별도로 정부가 추가 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이 경기 부진이 이어지자 재정의 적극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정부가 9월에 국회에 제출한 예산은 677조원, 국채 발행규모는 201조원 수준이다.
단기간에 한국의 나라살림 규모가 7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지만, 대통령실 입장을 보면 이마저도 부족해 연초부터 재원 마련에 나서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약자 복지' 등 재정사업을 늘리려고 하면 결국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시장에선 예산안 심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추경' 운운하는 것은 기본도 안 지키는 행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더 이상 기금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도 어려우니, 결국 내년 초부터 추경을 하려는 것 같다"면서 "예산 심의기간이고 예산 확정도 안 됐는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군불을 때기 시작됐으니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B 증권사 채권딜러도 "11월에 추경 얘기를 할 것이라면, 당초 예산안을 짤 때 반영하거나 예산을 늘리면 됐던 것 아닌가"라며 "이런 이상한 초식을 쓰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C 운용사 매니저는 "이 시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웃기고 정상적이라면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추경이 추가경정예산을 뜻한다는 말을 모르고 있는 것같다"고 비꼬았다.
■ 한국 재정, 고난의 행군...돌려막기 나라살림 속 경기 관점도 안 좋다 보니
작년에 세수가 56조원 부족하고 올해 30조원 가량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정부는 소위 각종 기금 '돌려막기'를 통해 나라살림을 꾸려왔다.
정부는 빚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부담스러웠으며, 지난해 이미 외평기금 활용이라는 카드를 공개한 바 있다.
2024년 국고채 발행 계획 규모가 158.4조원으로 예상보다 적었던 이유는 정부의 절묘한 '돌려막기'식 살림살이 전략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외평채 18조원 한도를 따로 빼 '분식을 했다'는 비판도 받은 바 있다.
아무튼 정부는 지난해 국고채 한도에서 외국환평형기금 관련 돈을 직접 빼서 21년만에 외평채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나라살림을 운영해 본 뒤 정부는 외평기금 버퍼 등이 한계를 보이자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2025년 국고채 발행 계획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8월 정부가 제시한 내년 국고채 발행규모 201.3조원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101.7조원)의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과거에 비하면 바닥을 기는 성장세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빚 증가 속도다.
하지만 늘어난 살림살이 규모를 줄이기는 어려운 데다 윤석열 정부 역시 '약자복지'에 어떤 정부보다 진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하는 등 돈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경제 성장 전망이 어두워 내년 세수에 대한 걱정도 상당하다. 이미 금융시장 참여자 상당수는 내년 1%대 이하의 성장을 기정사실화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전날 최상목 기재부 장관은 임기말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50%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등 건전재정에 진심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예산심사기간' 중 '연초 추경' 얘기가 나오자 가계보다 못한 정부의 살림살이 행태 아니냐는 비난도 들려온다.
C 운용사 매니저는 "오늘 대통령실 발언을 보면, 여당이나 심지어 기재부와도 협의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재정 상황이 어렵다고)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 대통령실 '뜬금 발언' 예상 못했던 여당·기재부..."각하가 원하신다면?"
대통령실의 추경 편성 시사를 모르고 있었던 여당은 대통령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우선 "추경과 관련해 정부와 협의를 하거나 검토한 바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여당 지도부와 별다른 상의도 없이 추경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양극화 해소나 내수경제 진작 추경 요인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수 상황을 봐서 추경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추경 발언'에 기재부도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재부는 대통령실의 '추경 발언'이 아침에 문제가 되자 해명보도자료를 냈다.
기재부는 "22일 조선일보는 「尹정부 내년 초 추경, “민생위해 재정 적극적 역할 검토”」 기사에서 정부가 내수 부진과 경제 성장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21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면서 "현재 2025년 예산은 국회 심사 중"이라고 했다.
기재부는 그러면서 "내년 추경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어차피 내년 경기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돈이 필요하면 본예산을 늘리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예산심사기간에 '연초 추경'이라니 황당하다"면서 "마치 바보들의 대행진 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세수 상황을 보면서 판단을 하면 될 문제를 굳이 이 시점에 저런 말을 해서 혼란을 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실과 소통도 못하고 바른 말도 못하는 여당이나 기재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E 운용사 매니저는 "여당과 기재부가 대통령실의 독주를 못 막는 것 같다. 대통령실에서 엉뚱한 소리를 해도 쉴드만 치려고 하니 이런 이상한 그림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통령) 각하가 원한다고 다 따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개탄했다.
한편 채권시장에선 '연초 추경 가능성의 현실성' 등을 놓고 논박을 벌이기도 했다.
F 증권사의 한 중개인은 "아침에 뜬금없는 추경 기사를 본 뒤 연초부터 추경 편성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개장하자마자 채권 매도를 친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볼 때 내년 중 추경을 하더라도 본예산 중 상당부분을 상반기에 투입해 보고 안 되면 추경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