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0-05 (토)

(장태민 칼럼) '이해찬 세대'와 '윤석열 세대'

  • 입력 2024-09-30 14:2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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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출처: 이덕환 교수 블로그

사진: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출처: 이덕환 교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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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 개척으로 유명한 한 교수가 앞으로 한국의 의사는 '윤석열 세대'냐 아니냐 여부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2024년 의료사태 이후에 교육을 받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간의 차이와 차별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 주(26일) 대한변협이 주최한 '의료비상사태 해결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같이 예상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화학 석사,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를 취득한 뒤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개척해 온 인물이다.

한국 사회가 진짜 과학이 아닌 유사 과학과 가짜 과학로부터 오염되고 있어 이를 우려했던 인물이다.

이런 그가 최근 의대증원·의료개혁과 관련된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이 한국 사회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평가했다.

현대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위해선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과학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필수다.

하지만 화학자로서, 과학자로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애써온 교수가 볼 때 한국은 엄청난 '개악'을 추가하고 말았다.

■ 법학대학원·의학전문대학원 실패에 이어 '한국정부가 친 대형 의료사고'

한국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실패에 이어 의학전문대학원마저 실패했다.

의학전문대학원은 아예 퇴출돼 버린 상황이다.

이 교수는 30년간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해온 학자 답게 각종 제도 변화는 취지부터 이해할 것을 당부했다.

왜 제도를 바꾸려 했는지, 그 과정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차근차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과거의 실패에서 배운 게 없다고 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도입은 국민의 정부에서 과열된 대학 입시 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변호사와 의사를 어떻게 양성하느냐가 목적이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의과대와 법대만 없애면 입시과열이 해소될 거란 정말 순진한 발상으로 이해찬 당시 교육장관이 밀어붙인 결과였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은 1개 남겨놓고 전부 퇴출됐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한국 사회에 남겨놓은 상처도 고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의대 증원을 통한 개혁에 대해선 무능, 독선, 불통에 의한 '최악의 정책 실패'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사회가 대형 의료사고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의료개혁은 명백한 오진이었고 처방은 그야말로 돌팔이 수준이었습니다. 지난 7개월간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니, 딱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 유치하게도' 전공의·의대생을 향해 집단 증오를 표출한 일이라고 했다.

"의료 현장은 대붕괴가 시작됐고 PA간호사, 전문의 중심 수련병원, 진료 면허 이것 전부 말 안듣는 전공의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 대규모 증원, '의학교육의 질 저하' 차치하고 간단한 산수로도 말이 안돼

이 교수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정말 기가막힐 정도로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본 의료 현장은 대붕괴 중이며,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 사회는 현재 문제의 본질을 도외시한 채 '전공의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렸다고 했다.

"전공의는 그냥 수련병원, 소위 말해 상급종합병원의 경영 이익을 챙겨주기 위한 값싼 노동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전공의는 의사면허를 받고, 일단 다른 이공계 학과로 비유하자면, 대학원 과정에서 심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입니다. 대학원 학생, 수련 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정식 의사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집중적으로 키워줘야 할 학생들인데, 이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소위 빅5라고 알려져 있는 대형 상급종합병원이 한해에 소화할 수 있는 신규 인턴이 몇 명인지 아느냐고 했다.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의 2024년 인턴 정원은 104명이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2천명을 늘리면 서울대학부속병원 수준의 상급종합병원 20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해부학 교실 실험 실습실 문제 등 각종 문제들을 접어 두고(!) 2025년 학번이 졸업하는 2031년에 1,500명이 늘어나니 서울대병원부속병원 수준의 상급종합병원 15개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일단 내년에 시작하는 친구들이 7500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 중 인턴 정원은 3,200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수련병원 221개가 소화할 수 있는 신규 전공의 정원이 3,200명 밖에 안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그러면 7,500 빼기 3,200명, 즉 나머지 4,500명은 '일반의'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의가 6천명인데, 2031년 한꺼번에 4,500명의 일반의가 쏟아져 나온다고 했다.

노(老) 교수는 간단한 셈법으로 전공의 정원 문제를 이같이 짚어본 뒤 이렇게 되물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 사법부도 '한국 의료시스템' 붕괴에 큰 기여

이 교수는 변협이 주최한 토론회인 만큼 사법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고 했다.

우선 지난 6월에 이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부산대에서 증원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했을 때다.

하지만 대법원은 학습권보다 '공공복리'가 더 중요하다면서 의료계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교수는 '진짜 공공복리'가 뭔지도 모른 채 형식논리에 빠져 있는 한심한 사법부의 상황 인식을 비판했다.

"부산대는 그 당시에 60% 증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법원은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본 것 같아요. 아마 판사들이 법대에 다니던 때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충북대는 308%가 증원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법원 판사들이 이 충북대 사정을 어떻게 봤을까요? 60%는 괜찮지만 308%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내릴 적에 의과대학에 가서 현실이 어떤가를 한번이라도 보고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한국 사법부가 교육 과정이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의료 교육 현실을 무시하고 '비현실적인'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법부 최고 판단기관인 대법원 뿐만 아니라 사법 전반이 의료 현실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직격했다.

사실 의사 부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게 된 데엔 법원의 역할이 지대했다. 의료계는 사법부의 의료 과실에 대한 기계적 법 집행이 문제였다고 오랜 기간 하소연해 왔다.

이덕환 교수도 '법 하는 자들의 무지'가 사태를 키웠다고 분노했다.

"의료 현장의 현실에 대한 자의적, 임의적...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만 두겠습니다. (판사들이) 그런 능력으로 어처구니 없는 판결을 너무 많이 하셨죠. 그래서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응급실이 비어버리게 된 겁니다. "

■ 지금의 정부는 '과학적'이란 말만 좋아하는 가짜 과학 집단

이 교수는 정부의 잘못된 접근법으로 한국 과학의 현실도 참혹해졌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현실을 도외시한 채 R&D 예산을 대폭 삭감해 과학계의 반발을 산 뒤 다시 이번에 다시 늘려야 했다. 그렇다고 이런 정책 실패가 초래한 상처를 쉽게 아물어지진 않는다.

이 교수도 '아무 것도 모르는' 정부가 펼치는 정책 실패가 큰 충격을 준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자신들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고 개탄했다.

"과학자들은 2023년엔 (예산 훔쳐가는) 약탈적 떼도둑이었어요. 올해는 악마적 범죄집단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권은 왜 그렇게 '과학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40여년 한평생 과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적정한 의사의 수가 얼마인가를 과학에 물어보면 과학은 '모르겠다'고 답을 합니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제발 과학을 아무 때나 끌어들이지 마세요. 제발 과학을 이렇게 폄하하고 폄훼하고 왜곡하지 말아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정부는 그간 37회 회의를 했으니 그 결론이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과학을 40년 넘게 공부한 사람이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참석자도 공개를 못하고 회의록도 공개를 못하는 회의 37번 연 게 어떻게 과학적 결론을 끌어내는 방법입니까? 과학은 이렇게 왜곡시키면 안 되는 겁니다. (보건복지부가) 과학적이라는 말과 합리적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안 찾아본 것 같아요. 합리적 대안을 요구해도 저 같으면 못 하겠다, 봉급은 당신이 받는데 왜 내가 당신 일을 하느냐고 반박할 것 같아요. 왜 의료계에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합니까. 봉급은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다 받고 있는데...보건복지부 관료들을 일을 시킬 생각을 하셔야지, 왜 의사들한테 엉뚱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정부가 낙수효과라는 말을 자꾸하는데, 정부가 이 말의 의미를 알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낙수효과는 경제·시사용어다.

이 교수는 낙수효과라는 말은 부자감세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시사평론 용어라고 했다.

"이게(낙수효과) 어떻게 대한민국 의료정책, 의료개혁에 등장을 합니까?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가 없어요. 보건복지부는 이래선 안 됩니다."

■ 윤석열 세대의 탄생

이 교수는 2024학년도, 2025학년도 우리나라 의대에 들어간 학생들은 앞으로 '윤석열 세대'라고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역대 정부들의 잘못된 정책은 반복돼 나라를 좀먹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황당한 허언을 했던 교육부 장관의 말을 믿었던 학생들을 보고 우리 사회는 '이해찬 세대'라고 조롱을 했었습니다. 제 자식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다행히 (제 자식이) 근근이 살고 있기는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의대생들도 이제 그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가 됐다고 했다.

"앞으로 의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수십년 동안 쟤네들은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수련도 제대로 못 받고, 의사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윤석열 세대'라는 무거운 낙인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평생 과학을 공부해 온 노(老) 교수는 이제 국민들도 의사들을 가려서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병원에 갈 때 이 의사가 윤석열 세대인지, 그 이전 세대인지 가려서 가는 게 (의료) 소비의 지혜가 될 겁니다. 이 사태를 만든 것에 대해선 정말 끔찍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부가 아니라고 우기지만, 지금같은 방식이면 향후 한국 의료 교육이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의사들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정부 관료들의 말도 안되는 상황 인식이나 책임 떠넘기기 행태도 개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 의료 공백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전공의에게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에 머리가 쭈뼛했습니다. 그러면 군사독재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운동권 학생들의 책임이었습니까. 지금 21세기입니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총리가 이런 끔찍한 얘끼를 합니까? 어떻게 학생들에게 이런 어마어마하고 끔찍한 폭언을 합니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이 교수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논리가 실종된 정부의 자의적 주장과 해석을 힐난했다.

"의사수를 늘리는 게 국민적 합의라고 (정부가) 그래요. 올림픽 금메달 받는 것도 국민적 합의입니다. 그러면 올림픽 금메달 받기 위해서 체대 정원을 4천명, 5천명 늘리면 금메달 받게 되나요? 대한민국 국민을 이 정도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으로 대우하면 이거 참 난처한 거죠."

■ "해체할 대상은 한국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제일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이 신뢰를 잃어버리고 악마가 돼 버렸다는 점이라고 했다.

70대에 접어든 이 교수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폐단과 폐해가 안 고쳐질 것 같다고 했다.

"악마가 된 의사한테 가서 제 목숨을 연장해야 되는 입장이 정말 끔찍합니다.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의료정책을 이렇게 황당무계하게 황폐화시키고 초토화시켜버린 보건복지부, 그리고 거기에 들러리 서 가지고 일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교육부(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교육부는 사실 오래 전부터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 의료의 미래는 끝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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