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1-25 (월)

(장태민 칼럼) 포워드가이던스와 소수의견...그리고 부동산의 역습

  • 입력 2024-08-20 14:56
  • 장태민 기자
댓글
0
향후 한은의 금리 인하와 관련해선 '금융안정' 이슈가 중요하다

향후 한은의 금리 인하와 관련해선 '금융안정' 이슈가 중요하다

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장태민 기자] 2022년 11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소위 '한국판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을 알렸다.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IMF 아태국장 등을 지낸 '국제인' 이창용 총재는 미국처럼 한국도 미래의 정책금리 방향을 알리는 시스템을 금통위에 이식했다.

다만 이른바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이 처음인 만큼 '예상 기간'은 3개월 정도로 짧게 잡았다.

한은은 향후 포워드 가이던스를 6개월 등으로 늘리는 방향도 고민 중이다.

아무튼 이제 포워드 가이던스가 도입되면서 정책금리의 단기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좀더 쉬워졌다.

■ 가이던스 내 '인하 열기' 2월 처음 등장한 뒤 8월엔 2명으로

오랜 기간 금통위 내 소수의견이 한은의 금리 인하나 인상을 알리는 방향타 역할을 해왔다.

경제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경우 소수의견 없이 금리가 변경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환경이라면 금통위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면서 금리 방향이 변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후 포워드 가이던스 시스템이 등장해 이제 소수의견이 나오기 이전에 좀더 선제적으로 금리 방향을 알리는 일도 가능해졌다.

올해 2월부터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3개월 이내 기준으로 3.25%까지 열어두자'는 가이던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7월 회의 때는 3개월 내 3.25%로 열어두는 '가이던스 내 소수의견'이 2명으로 늘어났다.

6명의 금통위원(총재 제외) 중 1/3이 일단 3개월 내 인하 가능성도 감안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인하를 열어두자'는 게 인하에 전적인 무게를 싣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말 그대로 인하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자는 것이다.

■ 한은 통화정책의 '외부' 포워드 가이던스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은 한국 통화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연준이 금리 인하라는 큰 방향을 잡으면, 한국이 먼저 내리는 경우도 있다.

현재 금융시장은 미국 연준의 9월 인하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사그라들면서 9월 금리 인하폭에 대한 기대감이 50bp에서 25bp로 축소되기도 했지만, 연준 내부에서 매파가 돌아서는 모습도 관찰된다.

연준 내 매파로 평가 받은 사람도 '조만간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19일 WSJ 인터뷰에서 "고용이 약화할 위험이 커졌다"며 "9월 금리인하 논의는 적절하다"고 밝혔다.

카시카리는 50bp 인하에 대해선 반대했지만, 그가 최근까지 보였던 입장을 감안하면 도비시해 것이다.

카시카리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연말까지 금리인하가 필요없을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곤 했기 때문이다.

매가 비둘기에 대해 관대해지고 비둘기들이 친구 수를 늘리게 되면 금리 인하는 가까워진다.

연준의 변화가 이창용 총재, 유상대 부총재 등 국제 업무에 익숙한 금통위원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 주목되는 것이다.

■ 가이던스의 '인하 열기'는 '인하 소수의견'으로 발전할 것인가

'가이던스 상 소수의견'은 일정부분 소수의견 역할을 했다.

한국판 포워드 가이던스를 연준 점도표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인하 기대감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창용 총재는 올해 1월 금통위에서 '6개월 내 인하 기대하지 마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2월엔 '3개월 내 열어두기' 의견이 나와 금통위 내 균열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다만 금리 인하의 문을 열어둔 뒤 실제 인하는 아직까지 단행되지 않고 있다. 이번 주 8월 통방 회의에서도 인하는 단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상당수 투자자들은 한국판 포워드 가이던스 상 '인하 열기'가 실제 소수의견으로 발전하는지를 보고 있다.

'금리 인하를 열어두자'는 의견이 나온지 6개월이 넘어가고 그 의견도 2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이번엔 소수의견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인하 열어둔 지 오래됐다'...이제 소수의견 나올 가능성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은 7월보다 좀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은 한 때 '7월 소수의견, 8월 인하'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 우려를 앞세운 금통위의 '만장일치 동결'과 함께 그런 기대감은 타격을 입었다.

한은 총재는 시장 기대감이 과하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금리는 미국 상황을 보면서 더 빠졌다.

'외부의 포워드 가이던스(연준 정책 전망)'가 금리 인하 쪽으로 방향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이제 금통위 내부자들 사이에 치고 나가는 사람이 등장할지가 관심이다.

한은 내부에선 신성환·황건일 금통위원 같은 상대적으로 도비시한 인물들이 총대를 메고 변화를 알릴 것이란 예상도 보인다.

한은의 한 직원은 "최근까지 금통위가 변해온 흐름을 볼 때 포워드 가이던스의 '인하 열어두기'가 소수의견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복수(2명 이상)의 소수의견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수의견 자체가 나올 확률은 상당히 높아졌다고 했다.

■ 부동산 정책실패가 한국에 남긴 상처...통화정책 부담으로

포워드 가이던스가 자연스럽게 금리 인하로 연결될 것이란 믿음을 가로막는 사회 현상이 있다. 바로 최근의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다.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코로나19 당시 한은의 제로금리(정확히 말하면 0%대 금리실험) 정책이 부동산 값을 '더' 띄웠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한은이 금리인하로 대응하면서 '한국인들의 계급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이런 사람들의 반대 쪽엔 '오르지 못할 사다리'를 단숨에 올라가버린 운 좋은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부동산 폭등기를 거치면서 한국은 이미 노동과 노력의 가치를 쳐주지 않는 사회로 변질돼 버렸다.

2021년까지 이어진 집값 폭등기 이후 거래 침체기를 거친 뒤, 올해 거래량이 살아나자 주저 앉았던 서울 아파트 값은 다시 뛰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40대 초중반 무주택자 펀드매니저는 이런 말을 했다.

"몇 년 전 집을 사지 못한 저 같은 사람도 이젠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최근 금융권이 한은 금리 인하를 종용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기분이 착잡합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급등기에 한은이 부동산을 신경 안 쓰고 금리를 내린 뒤 저 같은 사람도 이제 서울 하층민 탈출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는 최근 집값을 몇 곳 확인해 본 모양이었다.

"최근 호가가 뛰는 게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물론 살 능력도 없지만 확인은 해 봤습니다."

필자가 볼 때 그는 서울 하층민이 아니었지만, 굳이 하층민 범주를 넓게 잡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년 전의 부동산 폭등만 없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생활 수준이 지금보다 상당히 나아졌을 것으로 봤다. 그런 사람이 지금의 서울 아파트 상승세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일 수 있다.

한국은행의 부드러운 통화정책 수행과 관련해선 오래 전 이성태 한은 총재가 사석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책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결정입니다. 그리고 좋은 통화정책을 위해선 사회 전반이 도와줘야 합니다."

금리 결정은 특정 계급에겐 이익을, 특정 계급에겐 손실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무주택자, 유주택자의 자산 인플레에 미치는 영향도 차별화된다.

금리 결정 효과는 사람들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않기 때문에 사회 다른 분야도 '잘 해야' 한다.

매끄러운 금리 결정을 하기 위해선 특정 섹터의 리스크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태 전 총재가 말했던 '사회 다른 분야의 도움'이 없어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