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2021년 12월.
한국 수출은 607.4억달러를 기록해 전년동월에 비해 18.3% 늘면서 한달만에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반도체 수출이 35.1% 급증하면서 수출 호조를 견인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의 서버용 반도체 수요 등으로 한국 수출은 호조를 나타냈다.
하지만 수출의 최고치 경신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는 20개월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석유∙가스∙석탄 등의 가격 상승으로 에너지 수입이 급증(당시 에너지자원 수입은 전체 수입의 26% 차지)하고 반도체 수출 호조로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이 확대됨에 따른 영향이 작용했다.
당시에도 2022년엔 수출 둔화가 예상됐으며, 무역수지와 관련해선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가 누그러지느냐가 관건이란 인식이 강했다.
현재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은 지속됐으며, 올해 무역적자는 지속되고 있다.
■ 그리고 2022년 8월...사상 최대 무역적자
이달 초 발표된 8월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금액기준으로 수출과 수입 모두 늘어났으나 에너지가격 급등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8월 수출은 567억달러로 7월에 이어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으나 수출 모멘텀은 확연히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조업일수 영향을 제거하고 볼 경우 일평균 수출 증가율이 13.9%에서 2.2%로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원자재값 고공행진이 이어진 탓에 수입도 크게 늘었다.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3대 에너지원인 원유, 가스, 석탄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무역적자가 크게 확대됐다.
에너지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순상품교역조건(수출가격지수/수입가격지수)이 악화돼 한국의 적자규모는 확대가 불가피했다.
최근 한국의 무역적자는 큰폭으로 불어났다. 무역수지 적자는 6월 25.7억달러, 7월 46.7억달러에 이어 8월엔 94.7억달러로 대폭 늘었다.
무역적자 확대를 유가 등 원자재값 급등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에 찜찜함도 있었다. 품목 요인, 지역 요인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작년말만 하더라도 한국 수출을 견인했던 반도체 수출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IT 수요 위축으로 7.8% 감소했다. 자동차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차츰 해소되면서 이연수요가 작용해 자동차 수출을 증가세를 이어갔으나 반도체가 힘을 쓰지 못했다.
아울러 중국으로 향하던 수출 둔화도 눈에 뛰었다. 중국향 수출이 3개월 연속 감세를 이어갔으며, 감소폭은 5.4%로 커졌다. 중국의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은 점이나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감안할 때 미국, EU 쪽 수출이 버텨줘야 했으나 글로벌 경기 둔화 징조 속에 한국의 주요 수출처가 받쳐주지 못했다.
■ 에너지 수입국의 운명..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
8월 무역수지 적자는 예상을 크게 상회한 수준이다. 적자가 100억 달러에 가까운 수준(94.74억달러)으로 불어난 것은 종전 최고치(1월 49.49억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었다. 경제규모는 감안한 GDP 대비 무역적자 규모는 0.52%로 0.54%를 기록한 1983년 1월 이후 최대였다.
직관적으로 보더라도 무역적자가 크게 불어난 이유는 원유 등 원자재값 급등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년비로 본 8월 수출과 수입 물량 증가율(8.2%, 7.5%)은 금액 기준 증가율(6.6%, 28.2%)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반도체 단가는 떨어진 반면 에너지 가격은 공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한국 수출입 수지는 악화된 것이다.
글로벌 경기가 나쁠 때는 에너지 수입단가가 떨어지면서 한국이 흑자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랐다. 에너지 가격이 기본적으로 너무 높았으며, 이는 한국 거시지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성우 DB금투 연구원은 "에너지 순수입 비중이 큰 한국경제 특성상 경기, 인플레, 금리, 환율의 거시 변수들도 에너지 가격에 높은 민감도를 보인다"며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고 8월 GDP 대비 무역적자 규모는 주요 수출국 가운데 가장 큰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파른 원화 약세는 글로벌 달러 강세 요인 외에 에너지 수입 의존가 높은 경제의 취약성도 반영된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이 안정돼야 거시 변수에 대한 변동성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무역적자, 더 세부적인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무역수지는 2008년 이후 '분기 기준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6월부터는 무역적자가 대폭 불어났다.
지금같은 에너지값 고공행진 시대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독일 등 에너지 수입국들의 무역수지가 악화된다. 한국 무역수지는 특히 에너지 수입단가에 취약하다.
한국은행 국제무역팀의 분석을 보면 1~8월 무역수지 전년비 감소액 454억달러 중 단가요인으로 472억달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물량 요인으로 18억달러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원자재 등 수입단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정도(-867억달러)가 수출단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폭(+395억달러)을 2배 이상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량 측면에서도 올해 수출물량의 무역수지 개선효과(+165억달러)가 작년(+372억달러)에 비해 축소됐다.
품목별 분석 결과, 에너지·석유제품(정유)의 단가요인(-353억달러)이 금년 무역수지감소분(-454억달러)의 78%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화공품·기계 등을 중심으로 수출물량 증가세가 전년에 비해 축소됐다. IT부문의 경우 단가(-93억달러)보다 물량요인(+115억달러)이 크게 작용하면서 무역수지를 개선(+22억달러)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여름부터 무역적자가 더욱 커진 가운데 당장은 밝은 전망을 내놓기도 어렵다. IT 쪽 수출은 악화되고 있어서 원유 등 높은 원자재값에 따른 수지 악화를 상쇄해주기도 어렵다.
한은 국제무역팀은 "최근 수출 단가하락 및 물량증가세 둔화가 점차 확대되고 있어 향후 IT부문의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무역팀은 "올해 원자재가격 수준은 수입물가를 기준으로 할 때 직전 고유가 시기(2011~2013년)와 유사하지만 상승 속도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빠른 편"이라며 "특히 금년에는 원유뿐만 아니라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가격이 모두 급등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글로벌 경기 측면에서도 중국 봉쇄조치, 러·우 전쟁, 주요국 정책금리 인상 등으로 주요국 성장세가 약화됨에 따라 수출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도 무역적자에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한국 수출입구조, 최근 수년간 무역수지 악화되기 쉬운 구조로 바뀌었다
높은 유가도 문제지만 과거 고유가 시대의 파고를 헤쳐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업종의 역할이 줄어든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금은 과거 무역흑자에 크게 기여했던 휴대폰·디스플레이·선박·자동차 수출이 상당 기간 둔화 흐름을 지속하면서 이전 고유가 시기(2011~2013년)와 달리 에너지·광물 부문의 무역적자를 제대로 메워주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2010년대 중반 이후 무역흑자가 크게 기여했으나 다른 품목들의 영향은 이전과 못하다. 중국 업체와 경쟁은 심해졌으며, 생산기지도 해외로 많이 나간 상태다.
글로벌 경제의 가치사슬 체계에서 한국은 중간재를 수입해 수출을 하는 나라다. 최근엔 중간재 중 수입재 비중이 더욱 늘면서 수출을 늘릴 때도 순수출 증대 효과가 이전만 못하다.
IT, 기계장비, 전기장비 등의 중간투입재 중 수입재 비중이 계속 늘어으며 철강금속 등의 수출자립도도 약화됐다.
최근엔 IT부문의 지속적인 생산투자 확대로 고가의 반도체 제조장비, 이차전지 관련 수입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석유류를 제외한 총수입이 자본재를 중심으로 장기 추세를 크게 웃돈다.
■ 중국, 예전처럼 한국에게 큰폭의 흑자 담보해주지 않는다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 해소나 흑자로의 전환을 위해선 유가가 떨어져야 한다.
한은 국제무역팀은 유가 10달러 하락시 원유 수입과 석유제품 수출입 변동을 통해 연간 무역수지가 93억달러 개선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분석은 2021년의 원유 수입 및 석유제품 수출입 물량이 불변하는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유가 하락에 따라 물량이 10% 증가하는 것으로 가정할 경우 무역수지는 84억달러 개선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에너지가격 하향 안정이 과거와 같은 무역흑자국으로의 온전한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중국은 과거 만큼 한국의 흑자를 담보해 주지 않고 상당 부문에서 한국의 기술력을 넘어섰다.
국제무역팀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무역수지가 흑자 기조로 복귀하더라도 해외생산 확대, 중간재 수입의존도 심화 등 국내 수출입 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 및 자급률 제고 등의 영향으로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의 작년 9월 분석에 따르면 중국 수입시장에서의 한국 점유율 축소(00년 10.3%→10년 9.9% →21년 8.0%)는 주로 중국 자급률 상승에 따른 한국 제품의 경쟁력 하락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 지나친 비관론은 경계...무역수지만이 아니라 경상수지도 봐야
한국이 해외로부터 벌어들인 이익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선 무역수지뿐만 아니라 경상수지도 봐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생산 확대로 가공무역, 중계무역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해외투자로부터 벌어들인 이자나 배당 관련 수지도 흑자규모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한은 국제무역팀은 "매출기준 해외생산액은 2010년 2,150억달러에서 2019년 3,680억달러로 1.7배 증가했다"며 "업종별로 보면 자동차(34%), IT(27%)가 해외생산에서도 6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해외생산 확대시 통관기준 수출액이 줄면서 무역수지가 감소한다. 가공무역 수출(국내 본사가 해외 생산법인에 위탁생산한 완제품을 해외에 판매)과 중계무역 수출(국내 본사가 해외 생산법인에서 완제품을 구매해 해외에 판매)은 해외 현지생산을 통한 수출이라는 점에서 통관을 기준으로 하는 무역수지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경상수지의 구성항목인 상품수출에는 포함된다.
올해도 한국 경상수지는 무통관수출 증가, 본원소득수지 흑자, 서비스수지 개선 등으로 흑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무역팀은 "무역수지만으로는 우리의 대외활동 성적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며 "실제 금년 2분기 상품수지는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중계무역순수출 등이 늘면서 유가가 빠르게 상승했던 2011년과 비슷한 수준의 흑자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 수출 중심 경제강국 위해선...'국내기반' 제조업 경쟁력 유지가 관건
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하지 않으면 올해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고유가와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을 감안할 때 상황을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IMF는 지난 7월 글로벌 수요둔화와 달러 강세 영향을 감안해 2022년과 2023년 교역량 전망치를 4.1%, 3.2%로 각각 0.9%p, 1.2%p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글로벌 달러 강세와 맞물린 한국의 '상대적으로 더 부진한' 무역수지는 원화값을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에너지가격 상승폭이 둔화됐으나 절대적인 수준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와 원화 약세간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하반기 수출 둔화에 따른 한국경기 하방 압력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가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무통관수출 확대, 본원소득수지 흑자 등으로 연간 흑자 기조는 이어질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월별로는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아울러 한국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선 국내에 튼실한 수출 기지들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이후 해외생산이 확대되는 가운데 자국내 제조업체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상품수지 흑자 규모도 점차 줄어들어 경상수지의 안정적인 흑자 기반이 약화된 바 있어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일본은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플라자합의(1985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2010년 이후로는 본원소득수지 흑자가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은 국제무역팀은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 규모가 일본이나 독일보다 작은 상황에서 해외생산 확대 및 국내 수출업체의 경쟁력 약화 등으로 상품수지가 지속적으로 축소될 경우 경상수지 흑자가 기조적으로 줄어들거나 간헐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진단했다.
국제무역팀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출 확대를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 글로벌 교역여건상 주력 산업의 해외생산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국내 투자여건 개선 및 혁신생태계 조성을 통해 국내 기반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출처: 한국은행 보고서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사상최대 무역적자와 짚어볼 문제들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