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8월 금통위 장면, 출처: 한은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전날 금통위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한은은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해 일부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그 동안 이주열 전 총재는 주로 '미국 통화정책을 기계적으로 국내에 대입하긴 어렵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금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잭슨홀 미팅 결과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 통화정책이 미국 통화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인식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사실 한은이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으며, 미국 통화정책을 그대로 한국에 대입할 수 있다는 점도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총재가 한은의 특정 성격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주미대사·IMF 출신의 공통분모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25bp 인상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이스라인은 당분간 물가 5% 수준이 상당히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 기조를 지난번 포워드 가이던스대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재의 이 발언 뒤 물가가 2% 목표에 안착하려면 실업을 동반한 경기침체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아니면 경제가 연착륙 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보는지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자 총재는 대뜸 "이 질문엔 조윤제 금통위원이 아주 표현을 명확하게 했다"고 소개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한국은행은 지금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굉장히 많이 개선돼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한국은행은 미국 Fed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했다.
조윤제 위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통했던 인물이다. 문 정부 들어 주미대사로 일한 뒤 금통위원 자리를 받아서 일하고 있다.
주미대사 출신의 금통위원과 IMF와 같은 해외기관에서 오래 일한 국제통 출신 한국은행 총재의 생각에 공통분모엔 '연준 정책의 중요성'이 있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외부 충격 통제할 수 없는 한국
이창용 총재는 또 한국 통화정책이 외부 변수에 많이 휘둘리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결국 한국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외부 충격을 배제한 채 정책방향을 잡아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총재는 "금리나 이런 정책을 통해서 물가안정을 경착륙 없이 달성할 수 있느냐, 이 질문은 외부 충격에 의해서 결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그래서 한국은행이 어떤 조치를 한다고 해도 외부에서 오는 충격에 의해서 대응해야 되는 것이 더 큰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경착륙을 피할 수 있다, 아니다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외부에서 유가가 더 큰 폭으로 뛴다든지, 중국경제나 미국경제가 훨씬 나빠진다고 하면 한국이 그 문제를 컨트롤 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답변이기도 했다.
한은 총재의 스탠스는 상당부분 '외부 충격이 없는 경우'를 가정한 뒤에 통화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노출됐다. 그리고 총재는 '외부충격이 없다'는 가정하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총재는 "현 상황은 임금이 올라가고 그것이 다시 물가를 올리고, 물가가 올라가서 임금이 올라가는 그런 상황이 막 시작하려는 그런 상황에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을 통해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조절하고 그것이 임금과 물가의 상승작용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으면, 더 이상의 외부 충격이 없다면 경착륙 없이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다"고 매우 장황하게 말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일단 2번의 추가 베이비스텝 테이블 위로
한은 총재가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을 거론하자 한국도 다시 미국처럼 큰폭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에 대해 총재는 "모든 통화정책 상황에서, 지금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편으로 ‘이것은 안 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재는 "또 빅스텝을 할 수 있느냐 이런 말은, 지금 경기위험이 크다고 그러면 당연히 반대 방향으로 갈 것이다. 물가위험이 크다면 가능성도 있고. 그래서 제가 드리는 말씀은 당분간은 25bp로 올리는 것이 기조라는 말씀을 드리고 그 외에 기간이라든지 그 외의 충격이 왔을 때는 원칙적으로는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총재는 빅스텝 등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은 채 당분간 25bp 인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은 총재가 지금은 '3개월 후'를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글로벌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단 올해 마지막 금리결정회의인 11월 회의까지는 기준금리 25bp 인상을 예견해 볼 수 있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총재의 발언을 감안할 때 물가나 글로벌 경제에 대격변이 없다면 10월과 11월은 그냥 25bp 인상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일단 기준금리는 3%로 오르고 그 지점에서 한은이 어떻게 할지는 그들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잭슨홀로 떠난 한은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금통위가 끝난 뒤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잭슨홀에서 개최되는 캔자스시티 연준 주최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Jackson Hole Economic Policy Symposium)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출국해 29일 월요일에 귀국한다.
총재는 26~27일 중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이 총재는 '경제 및 정책 제약조건에 대한 재평가'(Reassessing Constraints on the Economy and Policy)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학계 인사들과 논의한다. 일부 세션에는 직접 패널 토론자로 참여할 계획이다.
이 총재는 국내 경제학자 가운데 글로벌한 명망을 쌓은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서울대와 하버드를 나온 뒤 서울대 교수,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IMF 국장을 지냈다.
그리고 그는 상당히 자신감 있는 직설 화법을 구사한다. 이번 잭슨홀에서 총재가 보고 듣고 올 연준과 각국 중앙은행의 분위기는 한은의 금리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전날 예상을 뛰어넘는 매파적 금통위를 두고 2022년 잭슨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었나 하는 평가도 있었다.
B 증권사의 한 딜러는 "총재가 물가를 매우 강조했다. 물가 고점이 문제가 아니라 내년 하반기에 3%로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면서 "잭슨홀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꽤 반영된' 잭슨홀 악재와 매파 이벤트 예고한 지역 연준 총재들
25일 미국채10년물 금리는 7.99bp 하락한 3.0267%로 내려왔다. 그간 잭슨홀 이벤트 등을 경계하다가 파월 의장의 발언 등을 앞두고 5일만에 레벨을 낮췄다. 8일만에 하락한 유럽 금리가 미국 금리 하락을 자극했다.
뉴욕 다우지수는 2주만의 최대폭인 1% 가량 상승했으며, 나스닥은 금리 하락을 보면서 1.7% 속등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격변수는 하락 압력을 받으면서 잭슨홀 악재를 꽤 반영했다. 전날 매파적 금통위에 일격을 당했던 국내 채권 금리도 이날은 해외금리 하락 등에 의해 레벨을 낮추고 있다.
금융시장이 이번엔 무시했지만(?), 파월 의장의 발언을 앞두고 연준 관계자들은 꽤 매파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지역 연준 총재들의 발언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을 일정 부분 가늠해볼 수 있다면 긴장감을 온전히 풀기는 어렵다.
연준 관계자들의 매파적 발언에 시장에 내성도 생겼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25일 "연말까지 금리를 3.75~4%까지 높여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이러한 선제적인 금리 인상이 매력적인 것 같다. 높은 인플레 상황을 잡는 것에 진심임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는 "연준이 미국 경제에 압박을 가하는 수준까지 금리를 올리지는 않았다. 기준금리를 4% 웃도는 수준까지 올려야 할 수도 있다"면서 "인플레가 광범위한 수준이어서 연준이 해야할 일이 더 남았다"고 했다.
잭슨홀 행사가 열리는 캔자스시티 조지 총재는 지난 6월 FOMC의 75bp 인상에 대해 반대했던 인물이지만, 현재는 인플레 제어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있는 중이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란타 연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고점을 쳤다는 판단은 아직 이르다. 연준 정책위원들 모두 인플레이션이 큰 문제임을 알고 있다"면서 "인플레는 연준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지역 연준 총재들의 매파성엔 차이도 드러난다. 향후 금리 인상 강도, 목표하는 기준금리를 놓고 관점 차이도 있는 것이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는 "금리를 제한적 수준까지 올릴 필요가 있다. 인플레를 잡는 문제에 있어서 희망의 빛이 조금씩 보인다. 금리를 3.4% 이상 수준까지 인상한 후 한 동안 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다만 하커는 9월 FOMC 회의에서 50bp를 인상하면 도비시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과 함께 "현재로선 9월 FOMC 회의에서 50bp 인상, 75bp 인상을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은 한은...시장금리, 되돌림 과정에서 엿보이는 자신감 부족
전날 매파적 금통위를 통해 5년 이하 금리들이 20bp 넘는 폭등세를 보인 뒤 국내 채권시장은 이날 가격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금리 급등세를 이어왔던 영국, 독일 등의 금리가 하락하면서 미국 금리 하락도 견인했다.
고물가로 인한 통화긴축 우려 등으로 7일간 70bp 가까이 뛰었던 영국10년물 금리는 25일 8.37bp 속락한 2.6130%로 내려왔다. 독일 10년물 금리도 8일만에 하락했다. 분트 수익률은 5.27bp 하락한 1.3147%로 떨어졌다.
최근 인플레와 잭슨홀 이벤트 등에 대한 경계감 속에 크게 올랐던 금리가 일단 되돌림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채권시장은 전날 금리 폭등 여파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잭슨홀 이벤트에 대한 경계감도 벗어던지지 못한 상태다.
C 증권사의 한 중개인은 "사람들이 잭슨홀을 보고 방향을 잡으려는 모습"이라며 "지금은 의견 보류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이 정도면 다 왔겠지 했다가 올해 2번을 크게 당했다. 금리가 오버슈팅 됐지만 이번에 세번째로 크게 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면서 이날 가격도 제대로 반응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