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금리 인상 강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유가로 꼽았다.
이 총재는 1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예상한 기조대로 금리인상 할 수 있을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라며 "10월 이후 유가가 (다시) 크게 오르면 정책기조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한은이 이미 천명한 금리인상 루트는 25bp씩 꾸준히 베이비스텝을 밟는 것이다.
이 가이던스에 따라 이달 기준금리 25bp 인상은 기정사실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연말 기준금리는 2.75~3.00%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유가 중요.."일단 금리는 25bp씩 더 올린다"
한국은행, 기재부 등 금융당국은 물가가 가을에 고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좀더 물가 상승률 6%대 시기가 이어진 뒤 연말로 갈수록 물가 오름세가 둔화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유가 급등세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봤다. 한은 총재의 이런 기대가 실현될지 여부가 금통위 금리 인상에 있어서 관전포인트다.
이 총재는 "최근 1~2개월 유가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우리 예상대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기대감과는 별도로 현재는 금리인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자칫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더 커지면 더 많은 정책적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이 6%대에서 더 높아지는 것은 기대 인플레 등을 더욱 자극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가 7%, 8% 되면 이것이(물가상승률이) 가속화 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면서 미국 사례를 들었다.
그는 "미국 물가상승률이 9%가 되니 1%p 인상을 논의하는 것을 볼 때 우리도 실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2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75bp 올렸다. 다만 최근 물가 상승률이 9%를 넘어 고공행진을 하자 100bp 인상 얘기까지 나왔던 것이다.
총재는 "현재 물가상승률이 6%이고 물가 오름세는 계속 되는 중"이라며 "오름세를 잡지 못하면 실질소득 더 떨어진다. 뒤에 잡으려고 하면 더 큰 비용 든다"고 말했다.
따라서 총재는 "물가 오름세 꺾이는 모습 보일 때까지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아울러 "금리를 그대로 두고 물가를 잡기 어렵다.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 10월 정도엔 물가 고점 봐야 하는데..
이 총재는 "해외요인에 큰 변동이 없다면 물가가 6% 넘어 2~3개월 상승 후 조금씩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햇다.
그는 "이런 예상이라면 25bp씩 금리를 올려 물가 상승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한은 총재는 대략 올해 가을이 끝나기 전에 물가상승률이 고점을 찍는 그림을 그리면서 금리를 25bp씩 올린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기재부의 전망도 한은과 큰 차이는 없다.
추경호 부총리도 이날 국회에서 "대외요인 쪽에서 추가적인 돌발변수가 없는 한 9월, 10월 경 물가가 피크를 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아직은 불확실성 때문에 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부총리는 "(물가와 금리정책 관련) 한은 총재 의견에 큰 틀에서 동의한다"면서 "금리인상 따른 취약계층 어려움은 다른 형태의 대책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역시 한은의 금리 인상 지속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가와 민생안정 문제가 시급하다보니 물가 안정을 위한 한은의 금리 인상을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하향 안정되던 유가가 다시 급등해 물가 압력이 한층 높아지면 한은의 금리인상 스케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은 총재도 이 점을 걱정했다.
이 총재는 "예상한 기조대로 금리인상 할 수 있을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라며 "10월 이후 유가 크게 오르면 정책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 유가, 한은 긴축 강도의 핵심요인
한은 총재는 유가 재급등으로 올 가을 물가 피크 아웃이 힘들어지면 금리 인상 강도에 힘을 더 실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 부분은 불확실 영역이다.
일단 한은 총재는 유가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25bp씩 인상하는 게 가능하다고 봤지만,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이 총재는 빅스텝을 배제하느냐는 질문에 "예상했던 물가 기조에서 벗어나면 배제 안 한다. 그 때 가서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현재로선 경기가 크게 나쁘지 않아 금리 인상의 환경으로 나쁘지 않다는 점도 시사했다.
총재는 "2분기 성장률 0.3% 전망했는데 0.7%가 나왔다. 아직까지 국내경기 크게 나빠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일부 국회의원이 내년 성장률이 2%에 못 미친다거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초래될 가능성을 거론하자 10월쯤 해외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100달러 밑으로 떨어진 WTI...오름세 꺾였지만 하방 경직성도 보여주는 중
올해 들어 국제유가는 3월 초순 한 때 130달러선 근처까지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러-우 전쟁 발발 뒤 에너지 가격 우려가 증폭됐던 때다.
이후 유가는 100불 아래로 반락하기도 했지만 6월 초중순엔 다시 120달러을 웃돌면서 유가 하향 안정이 만만치 않음을 보였다.
그런 뒤 지금은 유가가 100달러를 하회해 있다. 29일 미국 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장대비 2.20달러(2.28%) 오른 배럴당 98.6를 기록했다.
7월 하순부터 WTI는 90불대를 기록 중이지만, 100달러와의 거리를 10달러 이상 벌이지 않고 있다. 즉 최근 유가 오름세가 꺾였지만 나름대로 하방경직성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휘발유 수요가 3주만에 일평균1,000배럴(bpd)을 상회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가 집계한 미국 명목 휘발유 수요는1,001.3만bpd(7월22일 기준)를 기록해 직전 2주 동안 WTI등 국제 유가를 짓누른 석유 수요 위축 전망을 누그러뜨렸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다시 100달러를 하회한 유가는 과도한 수요 위축 우려를 일축하고 WTI가격 하방경직성을 재확인했다"면서 "연중 최대 석유 수요 성수기인 드라이빙 시즌(6~8월) 동안은 배럴당100달러 부근에서 유가 하방경직성이 강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OPEC+의 결정, 한국 통화정책에 중대한 영향 미칠 수도
당장 현지시간 이달 3일엔 OPEC+ 정례회의가 개최된다.
이번 OPEC+회의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OPEC+가 9월 또는 남은 2022년 하반기의 원유 생산 할당량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OPEC+는 2020년 5월부터 점진적으로 증산을 했지만 이후의 로드맵을 정하지 않았다.
OPEC+의 기존 계획은 2022년 9월에 코로나19로 인한 감산 이전 수준으로 원유생산량을 완전히 되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OPEC+는 6월 정례회의에서 러시아의 원유생산량 감소와 원유소비국가들의 증산 요구를 감안해 7~8월 증산목표 달성시기를 8월로 앞당겼다.
이번 OPEC+ 회의에 따라 국제유가 향방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OPEC+에겐 원유생산할당량 유지, 원유생산할당량 소폭 상향, 원유생산할당량 큰폭 상향, 원유생산할당량 하향의 시나리오가 있는데, 원유생산할당량 유지 또는 소폭 상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김 연구원은 "이 경우 OPEC+의 결정이 국제원유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OPEC+가 원유생산량할당량을 큰 폭으로 상향할 경우에만 국제유가의 하락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발생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현재 OPEC+는 증산 목표량을 하회해서 생산하고 있다. 5월 OPEC+의 증산목표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대비 -450만b/d였지만 OPEC+는 목표치 대비 270만b/d 덜 생산했다. 국가별로는 남수단과 UAE만이 증산할당목표량 만큼 생산했다.
김 연구원은 "OPEC+은 현재 원유생산할당량을 하회해서 생산하는 국가들에게 생산을 늘리도록 장려할 가능성이 높다"며 "5월 생산목표량 미달의 주된 원인이 러시아이기 때문에 증산목표량 하회분을 다시 재분배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OPEC+가 원유생산할당량을 유지하거나 소폭 올릴 이유가 높은 OPEC+의 예비생산능력 부족, 러시아와의 관계 유지, OPEC+ 내 증산 합의 도출 어려움 등이 꼽힌다.
최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후라는 점에서 OPEC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사우디가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해 증산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 지속을 위해 큰 폭의 원유생산 증대를 결정하도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아울러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원가 등을 감안해 지키고 싶어하는 가격 수준 등도 무시하긴 어렵다.
김 연구원은 "OPEC 국가들의 평균 재정균형유가가 97달러 이상이라는 사실도 적극적 증산을 제한하는 요인"이라며 "반면 OPEC+는 글로벌 경기 둔화 및 예상과 다르게 부진한 중국의 원유 수요 등을 감안했을 때 향후 원유생산할당량을 하향 조정(감산)할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 한은이 보는 물가와 유가 리스크는..
한은은 이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공급망 차질 등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물가도 최근 오름세가 가팔라지고 물가 상승압력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 물가가 40여 년 만에 최고 수준(9%대)을 나타냈으며,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도 연초 3%대에서 5월 5%대로 올라선 지 한 달 만에 6%대로 오름세가 더욱 확대됐다고 했다.
고인플레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에너지·식료품 가격은 주요국 금리인상 가속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최근 하방리스크가 부각됐으나 공급측면에서 보면 상방리스크가 여전히 상존해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국제유가의 경우 수요둔화 우려로 배럴당 100달러 내외로 낮아졌으나 주요 산유국의 더딘 증산, 러시아 공급축소 등의 영향으로 공급불안이 지속 중"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은 여기에 더해 "국제식량가격의 경우 수확기 도래 등으로 최근 곡물가격이 하락했으나 우크라이나산 곡물수출 재개 지연, 이상기후 심화에 따른 작황 부진 우려 등을 감안할 때 상방리스크가 작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원자재가격 상승의 2차효과,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측 물가상승압력 증대 등으로 근원물가 및 기대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진단했다.
한은은 "일반인 기대인플레이션(향후 1년)은 7월 4.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경제주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할 경우 고물가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금리인상 사이클의 키 '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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