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1-17 (일)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엔의 몰락

  • 입력 2022-04-29 13:4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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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달러/원과 달러/엔 움직임...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달러/원과 달러/엔 움직임...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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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일본 엔화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오랜 기간 일본 엔화는 안전자산의 대표선수였다. 하지만 최근엔 글로벌 안전자산선호 강화 분위기에서도 엔화는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나타냈다.

엔화는 미국과의 차별화된 일본의 통화정책 때문에 대폭 약화돼 있다.

이달 중순부터 달러/엔은 125엔을 넘어서면서 20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

미국 달러가 독주하는 시대를 맞아 일본 엔화는 다른 선진국 통화보다 더 약화돼 있다.

달러/엔 환율은 28일 아시아 시장과 28일 뉴욕시장에서 130엔을 넘어섰다. 간밤 뉴욕시장에선 1.94% 오른 130.91엔을 기록했다. 20년 만에 130엔 선을 넘어선 것이다.

아울러 최근 엔화의 급격한 약세는 안 그래도 약세 압력을 받고 있는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절 달러/엔 환율은 급락하고 달러/원 환율은 급등해 안전통화와 위험통화간 극명한 대비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엔화는 이전의 엔화와는 달라졌다.

한편 간밤 뉴욕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0.68% 높아진 103.640로 올라갔다. 달러인덱스가 5년만의 최고치를 경신해 어느 선까지 오를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 일본 엔화, 어쩔 수 없는 통화정책 차별화

일본 중앙은행(BOJ)이 28일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했다. 국채 10년물 금리 목표치도 0% 부근으로 유지키로 했다.

경제 전망에선 지난 1월 대비로 GDP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근원 물가 전망은 상향 조정했다. 일은은 올해 GDP 전망을 3.8%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근원 CPI 전망은 1.1%에서 1.9%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경제 성장률은 하방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GDP 전망은 1.1%에서 1.9%로 상향 조정했다. 2024년 GDP 성장률은 1.1%로 전망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긴축으로 돌고 있지만 BOJ는 초완화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키로 한 상태다. 각국의 통화정책 변화 속에 일본이 섬처럼 기존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일본 화폐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특히 달러/엔 환율은 2002년 이후 20년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상태다.

BOJ는 매 영업일마다 무제한 일본 국채 매입을 지속할 것이란 입장이다. 최근엔 엔화 약세가 두드러지자 주변국 통화인 원화, 위안화가 덩달아 달러 대비 약세폭을 확대하는 등 엔저의 영향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 안전자산 대표선수 왜 이렇게 됐나

올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금융시장은 변동폭을 한층 키웠다.

근래에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은 심심찮게 위험회피 분위기를 강화시켰다.

하지만 엔화의 움직임은 과거와 달랐다. 글로벌 위기 때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으로 일본으로 회귀하던 엔은 '차별화된' 통화정책 때문에 과거와 같은 패턴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문제였다.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장의 화두는 인플레이션이다.

경기 둔화에 따른 위험회피보다 인플레에 따른 위험회피가 세계의 트렌드가 되자 엔화는 과거의 위상을 상당부분 상실했다.

각국의 금리가 가파르게 뛰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여전히 통화당국이 금리를 적극적으로 컨트롤하다보니 엔화 메리트는 떨어졌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에 따른 경기 우려, 계속되는 러-우 전쟁, 각 기관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 하향 등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 엔화는 살아나지 않았다.

주요국 금리는 경기둔화보다는 인플레이션 및 통화정책 긴축에 연동되고 있다. 엔화가 경기둔화 우려에 의한 강세 압력을 받는 데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금센터의 이상원·김선경 연구원은 "보통 글로벌 경기와 주요국 장기금리는 동조화 경향이 강하지만, 최근에는 뚜렷한 역의 상관관계를 이루는 이례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GDP 트래커와 주요국 장기금리(미국ㆍ유로존ㆍ일본 10년물 국채금리를 구매력 GDP로 가중평균)간 상관계수가 -0.6 이하를 보인 사례는 2005년 이후 3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 글로벌 인플레 압력 불구 위로 못 움직이는 일본 금리

최근 주요국 금리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정책 정상화, 혹은 긴축 강화로 급등했다.

하지만 일본의 금리는 중앙은행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미국이나 유로존 등 주요국 금리는 4~7년래 최고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미국이 작년 8월 하순 정책 정상화를 공언한 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8월말 대비 150bp 넘게 뛴 상태다.

최근 미국채 금리는 2.9%를 넘어서는 등 2018년 이후 가장 높다.

독일 10년물 금리는 최근 1%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올해 1월만 하더라도 마이너스권에서 놀던 분트채 금리는 현재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 10년 국채 금리는 BOJ가 무제한 국채매입 등 한층 강도를 높인 완화적 통화정책 대응으로 나오자 발이 묶였다. 일드 커브 관리정책 목표 금리의 상한(10년물 0.25%)에서 추가 상승이 막힌 것이다.

일본은 3월 29일, 30일, 31일, 4월 21일, 22일, 25일, 26일 10년물 국채를 지정가(0.25%)에 무제한 매입했다. 금리가 상단 근처로 올라오면 중앙은행이 추가 상승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일본도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는 여건을 맞았다. 하지만 일본의 인플레 압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일본의 3월 인플레는 1.2% 수준이어서 7%를 훌쩍 넘는 미국, 유럽 등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엔화 약세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이 물가 부담을 준다는 말도 나왔지만, 일은은 대규모 완화기조 유지를 고집했다. 여전히 엔 약세가 수출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도 강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은 작년 여름이 끝나는 시점부터 통화정책 긴축을 예고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긴축 강도는 예상보다 더 강할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일본 돈과 다른 나라 돈의 가격 괴리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 물가 압력에 의한 일본-세계 금리차, 엔화 메리트 떨어뜨려

미국-일본, 미국-유럽 등의 금리차가 계속 벌어지면서 엔화는 보유하기 힘든 통화가 됐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제로 금리' 국가가 됐으며, 엔화는 캐리 트레이드 통화의 대명사가 됐다.

저금리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면서 일본은 해외투자를 위한 엄청난 자금을 쌓았다.

2천년대 들어선 엔 캐리트레이드 전성시대가 열렸다. 글로벌 금리 상승기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됐다가 경기 우려 등으로 글로벌 금리가 하락하면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화 가치가 뛰는 일이 반복됐다.

아무튼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일본 금리와의 격차가 벌어지면 다른 나라 자산 투자를 위해 엔화 약세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엔 경기 요인보다 물가 요인으로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진 측면이 크다.

글로벌 성장둔화 우려에 따른 위험회피로 각국 금리가 하락하면 엔화가 각광을 받지만, 지금은 글로벌 안전자산선호가 일더라도 물가가 메인 테마이다 보니 엔화가 힘을 못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엔의 기술적 고점에서 달러를 매도하려던 플레이어들이 판이 바뀌었음을 인지하고 달러를 오히려 사들이자 엔화가 더 약해지는 일도 벌어졌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일본 경제을 압박하는 부분 역시 엔화 매력을 낮췄다. 유가가 크게 뛰면서 일본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줄자 엔화 지지기반이 약화된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 엔화의 터닝 포인트...글로벌 경기침체 오면 위상 회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지난 2010년대 초 유럽 재정위기 속에 세계 경제 더블딥 우려가 급속히 번졌을 때 엔화는 안전자산 통화의 위세가 무엇인지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금융시장은 일본은행이 2024년까지 통화정책을 크게 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미국, 유럽 등은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살아 있다.

다만 그간 엔화 약세가 지나쳤다는 측면, 글로벌 달러 강세가 가팔랐던 측면, 글로벌 경기 침체 도래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엔화가 위상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금융시장에선 달러인덱스가 올해 3분기 정도면 100 아래로 내려오게 될 것이란 전망들도 많은 편이다.
아울러 당국의 개입이나 미국과 통큰 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현재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심각해 엔 매수/달러 매도에 따른 달러 약세시 물가 압력이 가중될 수 있는 부분 때문에 쉽지 않을 듯하다.

현재으로선 여전히 엔화 약세가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돼 있다.

골드만삭스의 전략가 카렌 피셔맨은 29일 "BOJ가 개입하든 안하든 일본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며 "미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BOJ가 수익률을 통제를 지속하면 금리차 확대로 달러 선호가 늘면서 엔화 가치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셔맨은 "일본의 수익률 통제라는 전망이 바뀌지 않는다면 엔화 절상을 이끌 수 있는 시장 개입이 나오긴 어려워 보인다. 외환시장 개입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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