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4-26 (토)

(장태민 칼럼) 이국종의 절규

  • 입력 2025-04-25 14:33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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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군의무사령부

출처: 국군의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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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주 14일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의 강연이 '성리학에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정책 담당자, 그리고 한국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이기도 한 이 병원장의 강연은 거칠고도 절박했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뛰어난 전문가의 절규마저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한국사회를 보면 절망하게 된다.

성리학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그 분야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제일 잘 안다

한국은 현장 경험을 가진 진짜 전문가 대신 권력을 가진 가짜가 정책을 좌지우지한 지 오래됐다.

지난해 정부의 의료 농단사태로 어마어마한 세금 낭비와 국가적 손실이 초래됐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국종 교수는 외로운 목소리를 냈다. 이 교수는 당초 강연같은 건 하지 않으려 했지만, 국방부의 녹을 받아먹는 입장에서 군의관 대상 강연에 나섰다고 했다.

이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입만 털줄 아는 '문과놈'들이 다 해먹는 세상을 비관했다. 그가 볼 땐 의료계 내부 문제도 심각했다. 서울대, 연대 출신 의료계 권력자와 한국 공무원들에게 시달려 탈진한 듯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급기야 '한국 의료 개혁'의 당초 목표였던 바이탈과에 대해 '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젊은 의학도들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조언했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과목을 선택해 한평생 '뭐 빠지게' 일했지만 남는 것은 없었으며, '내 인생은 망했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에 대해선 '중간 착취자'가 맞으며, 대형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얻은 수익으로 호화로운 시설 확충에만 투자한다고 했다.

심지어 의료계 내부조차 실력이 아닌, 유교식 계급 사회가 돼 버렸다고 한탄하면서 '조선반도의 DNA'는 답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이국종 교수가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거친 말을 쉴새없이 쏟아냈을까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이국종 교수를 '누구보다 존경할 만한 성공한 의료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스스로를 패배자로 규정하면서 후배들에게 한국을 그만 포기하라고 한다. 필자는 이 교수의 거친 발언을 이 사회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한국사회는 어쩌다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사람이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을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정부의 의료농단과 의료 시스템 파괴 행위에 이 시대의 명의가 '손을 들고 말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특정 분야는 그 분야 전문가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한국이란 성리학에만 몰두하는 나라가 있다.

한국은 '권력만 쥐면' 어떤 의료 전문가보다 높은 식견을 자동으로 취득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 한국 의료시스템, 공무원이 아니라 권력 부족한 영웅들이 만들었다

이국종 교수의 절망감을 더욱 가중시킨 사건은 동료 의사의 죽음이었다.

이 교수가 군의관 대상 연설에서 언급한 고(故) 윤한덕 교수는 이 교수와 함게 응급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윤 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대한응급의학회 이사를 역임했고 2012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취임했다.

그는 중앙응급의료센터장으로 있으면서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료원 외상연구소장과 함께 닥터헬기를 도입하는 등 응급의료이송정보망 및 중증외상환자 이송망 체계 구축 사업에 착수하고, 전국 76개 중증응급질환 특성화센터를 구축했다.

또한 이 교수와 함께 전국에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응급의료종사자 전문화 교육에 앞장섰다.

윤 교수는 그러나 2019년 2월 4일 설 연휴 중 사무실에서 과로로 인한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다.

영웅이 산화하자 정부는 4월 7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정부는 응급의료정책 발전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해 윤 교수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정부가 하는 일은 이런 게 다였다.

진짜 큰 권력을 쥔 공무원들은 이 사회의 진짜 영웅들이 뼈를 갈아넣어 환자를 고치고 의료시스템을 손 볼 때 뒷짐 쥐고 이것저것 지시하다가 상장이나 수여하는 정도의 일밖에 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난 해부터는 본격적이고 대대적인 한국 의료 시스템 파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돈이 없는' 한국인이라면 앞으로는 지금까지 누렸던 가성비 좋은 의료시스템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 거짓 말하는 공무원들...권세만 쫓는 생쥐같은 자들

윤석열 정부의 의료농단으로 수조원의 국민 세금을 탕진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국민의 생돈을 날렸지만 의료 시스템은 계속해서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살 수 있었던 목숨이 수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장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의사들을 악마라고 비난하는 자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이 너무나 황당한 사태에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않는다.

의료인들을 조롱하고 의사들을 악마화했던 박민수 복지차관, 자신이 2천명 증원을 결정했다면서 책임지겠다던 조규홍 복지장관, 이들이 대체 무슨 책임을 졌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와 국가 경제에 큰 해를 끼친 이런 인물들은 어차피 책임을 질 수도 없는 문제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해댔다.

최소 파면이라도 하고 공무원 연금이라도 박탈해야 그나마 '1%에도 못 미치는 공정'이라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런 일마저 기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국 공직시스템은 망가져 있다.

2천명 의대 증원을 통해 더 좋은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이주호 장관의 거짓말도 거침이 없다.

이날도 이 장관은 국회에 나와 "의료 교육의 질을 높일 방안을 갖고 있다.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거짓말이 몸에 배인 자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 한가로워 보인다. 24년 수업을 공치고 25년 1학기 중간고사가 닥쳤지만 다수 의대생들은 여전히 수업을 받지 않는다. 너무 한가한 우리 교육장관은 참으로 질 높은 교육 방안을 찾은 듯하다.

■ 시스템 망친 자들의 떳떳함

생쥐처럼 사는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해 의대 2천명 증원 사태에 대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안상훈 전 사회수석(현 국민의힘 의원)의 행태도 어이가 없다.

필자는 안 의원이 국회에 나와서 하는 말들을 보면서 고개를 여러 번 갸웃거렸다.

자신이 추진한 일이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국회에서 애써 이 일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 말대로 여전히 한국은 기본적인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 해먹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안상훈 전 사회수석이 지난해 정치인으로서 보인 행보는 어이 없었다.

필자는 의료 농단, 한국 의료시스템 파괴에 큰 책임이 있는 자가 국회의원이 돼서 보인 행태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안상훈 의원은 작년 8월 국회에 나와 "의대생들이 의과학자로 멋진 진출을 하길 기대한다. 의대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는 와중에 시스템 붕괴의 책임이 큰 사람이 참으로 한가한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던 것이다.

안 의원은 작년 10월엔 "의대 증원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애초 의사과학자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공학 등과 '더블메이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 사회에 입힌 피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양지만 골라 권세를 누리면서 '좋은 말'만 하는 소인배의 교묘한 처세술에 할 말을 잃었다.

안 의원은 이번 대선판에 한동훈 후보 쪽에 붙어 복지와 의료 쪽을 다루는 듯하다. 사람을 써도 어떻게 이런 자들을 다시 쓰는가.

이국종 교수의 '거친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필자는 한국 사람들이 이 교수가 느꼈을 '처절하고 진솔한 절망감'을 조금이라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세계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했던 한국 의료에 대해 다시 일말의 희망이라고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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