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4-14 (월)

(장태민 칼럼) 빌 애크먼의 말발

  • 입력 2025-04-10 14:4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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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금 전 한국관련 내용을 포스팅한 애크먼, 출처: 애크먼의 X

사진: 조금 전 한국관련 내용을 포스팅한 애크먼, 출처: 애크먼의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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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억만장자 헤지펀더 애크먼의 '말발'이 통했다.

며칠 전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탈 CEO의 말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9일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선 관세를 125%로 더 인상한다고 발표했지만, 다른 나라들에겐 '90일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기본관세는 10%를 유지하지만 대규모의 관세 우려에 절망적인 표정을 짓던 많은 나라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트럼프의 진로 변경은 결국 애크먼의 조언과 예상을 따른 모양새가 됐다.

■ 애크먼, 대단한 말발 과시

애크먼은 현지 시간 6일 자신의 X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월요일 타임아웃을 선언하고 불공정한 관세 체제를 바로잡을 시간을 확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경제 핵겨울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애크먼은 "다른 국가들과 협상하기 위해 관세를 90일간 유예할 것"을 촉구했다.

애크먼은 계속해서 상호관세를 일시 중단하는 것이 전세계에 도움이 된다면서 '상호관세 90일 유예와 교역국을 위한 협상기회 제공'을 거론했다.

애크먼은 8일에도 자신의 X를 통해 "불공정 거래 관행을 없애고 미국에 더 많은 제조업을 도입하기 위해 관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지지한다"면서도 "미국의 가장 취약한 기업과 시민들에게 해를 끼칠 대규모 글로벌 경제 혼란 없이 협상을 완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일 관세가 시행되기 전까지 30일, 60일 또는 90일간의 유예를 요청한다"고 했다.

경제정책은 신뢰의 게임이라며 트럼프가 초반부터 너무 거칠게 나가는 것 아닌지 우려했다.

애크먼은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자다. 트럼프의 승리로 민주당이 내파(implosion)되길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처음부터 관세전쟁을 거칠게 이끌어가자 일단 애크먼이 제동을 건 셈이 됐다.

애크먼은 오랜기간 행동주의 펀드의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했던 만큼 정치 분야도 적극 참견(!)한다.

트럼프가 9일 90일 유예를 선택하자 이제 '잘 했다'고 칭찬하면서 '미국 국민을 대표해' 감사 인사까지 했다.

애크먼은 트럼프가 바이블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과대선전했던 트럼프의 성공담을 적은 책까지 거론하면서 트럼프의 엉덩이에 키스했다.

애크먼은 "대통령이 교과서적인 협상, 협상의 기술'(Art of the Deal, 트럼프의 책)을 선보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트럼프는 태도를 바꾸기 몇 시간 전 "이제 다른 나라들이 딜을 하기 위해 내 엉덩이를 핥을 것(kissing my ass)"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향해 상스러운 표현을 쓰면서 조롱했지만, 이는 미국의 점잖잖은 남성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애크먼, '한국처럼 해'

오지랖 넓은 애크먼은 트럼프와 협상하는 다른 나라도 한국을 '모범'으로 삼으라는 조언도 했다.

현재 국내에선 한국이 '트럼프 관세정책의 호구가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일단 애크먼은 한국을 스마트하다고 치켜세웠다.

애크먼은 지난 8일 한국에 대해 '스마트(Smart)'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애크먼은 'CNN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관세에 보복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은 새로운 무역 협상을 원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의 미국 조치에 대한 반발에도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는 글을 링크하면서 한국을 똑똑하다고 했다.

이 무서운 행동주의 헤지펀더는 미국에 맞대응하는 것은 패가망신하는 길이라면서 한국처럼 보복조치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고 다른 나라도 협상을 하라고 조언했다.

트럼프는 일본의 이시바 총리에 전화한 뒤 한국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를 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선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온 상태다.

한 쪽에선 화요일 한덕수 총리의 통화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의 통화에서 '긴밀한 동맹,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중요 교역 파트너로서 갖는 우선 순위'가 확인됐다며 칭찬했다.

한국과 미국은 진짜 동맹국으로서 조선, 에너지, 원자력 등 핵심 산업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반대 쪽에선 한국이 호구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트럼프가 일본 다음 순위로 한국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한 것일 뿐이며, 트럼프가 '원스탑 쇼핑'을 통해 한국을 많이 벗겨먹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한국의 흑자를 크게 문제 삼고 있는 데다 돈 안 되는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 방위비 증액 등을 통해 안그래도 힘든 동맹국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백악관이 한국은 많은 양보를 했다는 식으로 선전해 뭔가 많이 찜찜하다는 평가들도 보였다.

애크만이 말한 것처럼 한국인 스마트한 것인지, 스투피드(stupid)한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드러날 것이다.

■ 애크먼, 민감한 시기 '시장 치어리더'

온갖 자산과 회사에 투자하는 억만장자 행동주의 헤지펀더 애크먼은 시장이 예민한 시기에 '입을 털어' 돈을 버는 재주도 여러차례 보여줬다.

특히 지난 2023년 10월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5%를 넘어서려할 때 자신의 숏커버를 전 세계에 광고하면서 분위기를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당시 애크먼이 "채권 공매도를 풀었다"고 하자 금리가 더 오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투자자들이 달려들이 금리가 급락한 일도 있었다.

애크먼은 당시 "세상에 위험이 너무 많아 현재의 장기금리 수준에서는 공매도를 유지할 수 없다. 주식시장이 높은 변동성을 유지하는 데다 지정학적 긴장도도 커 안전자산인 미 국채 가격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동조세력을 모았다.

애크먼은 이처럼 시장이 예민한 시기에 자신의 포지션과 투자 방향을 광고하면서 시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곤 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은 맡고 있는 스캇 베센트도 월가 출신이다. 이러다보니 월가 거물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애크먼의 조언대로(?) 일단 방향을 잡은 가운데 앞으로도 이 투자 괴물의 발언은 많은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한 국내 채권딜러는 관전평을 이렇게 전했다.

"안 그래도 애크먼의 발언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과연 결정을 바꿀지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시 한번 애크먼의 정보력에 놀랄 수 밖에 없었네요. 이번에도 애크먼이 변곡점을 잘 찾아냈다고 봅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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