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3-09 (일)

(장태민 칼럼) 키스텝의 한국 반도체 몰락 우려

  • 입력 2025-02-24 15:29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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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주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TSTEP)에서 공표한 한국 반도체 몰락을 우려하는 보고서가 큰 관심을 끌었다.

키스텝은 한국 반도체가 시장 점유율을 내준 뒤 중국 등 다른 나라에겐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키스텝은 한국 과학 기술 분야의 전략적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한국 반도체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았다.

키스텝은 '3개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수준 심층분석: 반도체 강국으로 재도약을 위한 미래 이슈'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반도체가 2년만에 중국에 밀렸다고 평가했다.

조사 대상 6개국 중 우리는 기초 원천 연구 분야, 설계 기술 분야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했고, 공정 기술과 양산 기술에서는 대만에 밀려서 3위를 기록했다고 했다.

한국 반도체는 기술을 선도하지 못한 채 최근 중국에 급격히 따라잡힌 것으로 나타났다.

키스텝은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 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 중국이 94.1%라고 했다.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기술도 한국이 84.1%로 중국의 88.3%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했다.

전력반도체도 한국이 67.5%, 중국이 79.8%였고,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도 한국이 81.3%, 중국이 83.9%로 한국이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도에 진행된 기술 수준 평가 당시에는 한국이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반도체·첨단 패키징 기술,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 등에선 중국에 앞서 있다고 분석됐지만 2년 만에 역전당한 것이다.

■ 한국 반도체, 시스템은 어렵고 메모리는 중국에 잠식당하고...

반도체는 그간 AI시대, 첨단기술의 시대를 맞아 '산업의 쌀'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한 때는 한국의 산업 포트폴리오가 가장 유리하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한국 반도체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인공지능, 컴퓨터 등 각종 전자기기, 무기, 의료장비, 자동차 등에서 반도체 기술은 핵심 역량으로 꼽혀왔다.

한국은 불과 몇 년 전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최강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지만, 이제 메모리 수성 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키스텝 기술 분석가들의 현황 진단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키스텝은 "글로벌 반도체 점유율은 2023년 기준 미국 50.2%, 한국 13.8%, 유럽 12.7%, 일본 9.0%, 대만 7.0%, 중국 7.2%를 차지한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1년 21.0% 에서 23년 13.8%로 축소됐다"고 밝혔다.

단기간의 한국 반도체의 점유율이 급감한 것이다. 이 2년간 메모리 시장이 40% 작아지고 시스템 시장이 15.4% 확대된 데에 한국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시스템 반도체는 그간 '반도체 강국' 한국이 반드시 정복해야 할 분야로 꼽혀왔다. 시스템 쪽 시장은 메모리의 2배 이상이며, 인공지능의 발달로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앞세운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대신 잘하던 메모리 쪽을 중국이 잠식해 들어왔다.

■ 세계 반도체 이끄는 미국, 대만...추격하는 중국

미국은 종합적으로 볼 때 압도적인 반도체 최강국이다.

시스템 반도체나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부분 등 '크게 돈 되는' 중추적인 분야를 이끌고 있다.

키스텝은 "반도체 공정에서 부가가치 비율은 설계 50%, 전공정 24%, 후공정 6%, EDA&Core IP 4%, 장비 11%, 소재 5% 등"이라며 "미국은 설계 분야를 주도하고 있으며 디자인이나 설계에 필요한 EDA와 핵심 지식재산권에도 특화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또 반도체 장비, 소재 분야에서 일본, 네달란드 등과 함께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기업 시장은 Applied Materials(미국), ASML(네덜란드), Lam Research(미국), Tokyo Electron(일본), KLA(미국) 등이 이끈다. 글로벌 10대 반도체 장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75%에 달할 정도다.

대만은 다들 아는 것처럼 파운드리, 즉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세계 최강이다.

TSMC가 대만 반도체를 상징하고 있긴 하지만 대만은 후공정(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 중인 나라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작년 3분기 기준 대만기업이 전 세계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Statista에 따르면 TSMC 64.9%, UMC 5.2%, 삼성 9.3%, SMIC 6% 순이었다. 후공정(OSAT)에선 대만이 49% 정도로 절반을 점했다.

■ 밀려나는 한국 반도체

한국의 포지션은 애매해 보인다. 그간 메모리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로 군림해왔으나 첨단 반도체에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키스텝은 "2022년 기술수준평가에 의하면 한국은 반도체 분야의 5개 기술 중 메모리, 첨단패키징 기술은 미국에 이어 2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AI반도체, 전력반도체, 센서 분야는 조사 대상국 중 4, 5위 수준으로 하위권"이라고 했다.

키스텝의 기술평가에 의하면 한국은 반도체 관련 대부분 분야에서 긴장해야 하는 처지로 보인다.

대부분 분야에서 미국이 압도적 1위이며, 한국은 중국에 자리를 내주면서 밀리고 있다.

키스텝은 "반도체 기초역량 및 사업화 관점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의 사업화는 대만이 1위, 그 외의 기술은 기초역량 및 사업화 관점에서 모두 미국이 1위로 나타났다"면서 "중국은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모든 기술 분야에서 기초역량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점이 있는 메모리 기술에서도 중국이 기초역량 부분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반도체 국산화를 위한 정책 추진과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에선 한 때 사람들이 '제조2025'를 비웃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새 2025년이 됐다. 중국은 이 기간 나름대로 놀랄만한 기술력을 쌓아 올렸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키스텝은 한국의 첨단패키징 기술은 기초역량과 사업화 부분에서 미국, 대만, 일본에 이은 4위라고 했다.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은 미국이 기초역량 및 사업화 모두에서 1위이며, 중국은 기초역량, 대만은 사업화 부문에서 각각 2위, 한국은 기초역량 및 사업화 부분에서 각각 3위와 4위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전력반도체, 센서 분야는 비교 대상국에 비해 기초역량, 사업화 모두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으며, 특히 센서 분야는 2022년 기술수준평가 결과와 비교하여 중국에도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반도체 분야 전체를 대상으로 기술 생애주기에 따른 설문조사 결과 기초·원천, 설계, 공정, 양산 기술에서 모두 미국이 1위, 한국은 공정과 양산 기술에서는 미국, 대만에 이은 3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의 기초·원천, 설계 부분의 기술수준은 비교국 중 최하위로 평가돼 반도체 생애주기 중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나타났다.

키스텝은 무엇보다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했다.

키스텝은 "저출산으로 국내 학생 수가 줄어들고 석‧박사 과정으로의 진학 비율은 더욱 줄어드는 반면, 핵심인력마저 더 나은 환경과 보상을 찾아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AI반도체 시장 확대 이슈는 기술수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슈이지만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 미·중 견제, 자국중심 정책 등은 국내 기술수준 하강을 부추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지금의 시대는 신제국주의 시대(중국, 미국이 모두 제국주의 성격 강화)다. 이런 시대엔 자국 내, 혹은 우방국끼리만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려는 욕구도 발동한다.

키스텝은 한국 반도체의 중국 수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미 중국은 레거시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상당한 데미지를 준 상태다.

키스텝은 미중 경쟁심화 국면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비를 하고 있는지 걱정했다.

미국의 엄격한 수출 통제 속에 한국이 극단적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도 없지 않다고 했다.

■ 한국 반도체, 메이저리그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은 이미 10년전부터 국가가 반도체에 집중 투자해 상당히 기술력을 높였다.

중국은 '미국 없이도' 반도체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불가능해 보였던 원대한 꿈마저 꾸고 있다.

일본은 다시금 반도체 부흥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본 반도체는 재도약을 위해 미국·대만 등 우방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일본은 정부가 지원을 강화한 가운데 소프트뱅크, 도요다, 소니 등이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반도체 최강국이다.

R&D, 인프라, 핵심 인재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강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미국은 한국에도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등 더 달려나가 중국과의 격차를 벌이고 싶어한다. 심지어 한국 등에 미국 투자시 보조금을 주겠다고 꼬셨다가 트럼프 등장 후 입을 닦으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중국은 각국에서 기술과 인력을 훔치는 행위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도체 발전을 도모해왔다. 중국의 이런 노력은 반도체 제조 장비 생산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최근 한국은 이런 세계의 변화에 안일하게 대응했다. 민간과 정부의 R&D 투자는 경쟁국들에 비빌만한 수준도 되지 않았으며, '큰 소리를 쳤던' 시스템 반도체 등에선 가시적인 성과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수건을 던져선 안 된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경계감으로 붙어야 한다. 한국은 오랜기간 반도체의 세계적 강국으로 군림해 왔으며,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은 있다. 다만 현재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키스텝은 "국내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 대기업 중심으로 중‧소 협력업체가 공존하고 있으나 다품종‧고집적 소자 생산이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기업이 공존하는 산업 생태계 육성이 중요하다"면서 "첨단패키징 기술 확보와 생태계 조성을 위해 대규모 사업이 추진 중이나, 설계 및 파운드리의 역량 확보, 설계-제조-후공정 간 연계성 강화, 소부장 육성, 공공 인프라 마련 등 시스템 반도체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한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인재 지원'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키스텝은 "반도체 관련 기술수준 향상을 위한 미래이슈 1위는 핵심 인재이며 인재 확보를 위한 양성과 기존 핵심 인재의 유출 방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첨단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전문인력이 매우 중요하며 인력 부족은 단순히 생산 효율성 저하를 넘어 기술개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어 "정부의 반도체 인력양성 정책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인력 양성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해외 전문인력 유치를 위한 이민 정책 등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인재 유치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면서 "숙련된 고급 반도체 인력이 해외나 다른 직군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연봉 인상, 복지 강화 등의 근무환경 개선, 퇴직 이후의 반도체 분야의 커리어 패스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지금 정책적으로 우수한 기술 인력들을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를 원하는 일부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정치권의 '반도체 주52시간' 논란은 철부지 성리학자들의 한가한 말장난처럼 들린다. 세계의 기술 패권 다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한국이 지금 이런 나태하고 여유로운, 그리고 비현실적인 고담준론을 벌일 때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장태민 칼럼) 키스텝의 한국 반도체 몰락 우려이미지 확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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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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