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1-09 (목)

(장태민 칼럼) 지역화폐와 추경

  • 입력 2025-01-07 15:0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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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해가 바뀐 뒤 야당이 계속해서 조기 추경을 요구하는 중이지만, 여당과 정부는 이런 제안을 받지 않고 있다.

아울러 여전히 야당의 추경 내용 중 주목을 끄는 항목은 '지역화폐'다.

야당은 지역화폐 예산 확보를 '민생경제'의 핵심 중 하나라고 본다.

다만 일각에선 야당이 민생경제 회복을 외치면서 굳이 지역화폐 예산을 강조하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계엄 전날 '지역화폐'로 부딪혔던 여와 야

2024년 12월 2일.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본회의에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법정 기간(2일)을 지키지 못해 국민들에게 송구하다고 했다.

우 의장은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예산안 처리를 미룬 이유에 대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 의장은 예산안이 기한을 넘긴 문제는 여당과 정부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지역화폐가 부딪혔다.

야당은 일부에서 '이재명표 예산'으로도 불렀던 지역화폐 예산을 정부가 제대로 배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했다.

야당은 법 때문에 예산안을 직접 늘릴 수 없게 되자 '감액예산'을 통해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 야당은 "정부와 여당은 지역화폐, 기후위기 대응, 장애인 지원 예산 등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예산 증액에는 ‘입꾹닫’하지 않았느냐"라며 예산안 파행사태를 정부와 여당 탓으로 돌렸다.

이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능성 없다'고 봤던 계엄을 선포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 '지역화폐' 달래기와 성에 차지 않았던 야당

2024년 12월 10일.

민주당은 이날 4.1조원 감액한 예산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계엄사태가 터진 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난·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와 야의 지역화폐에 대한 앙금은 계속 남아 있었다.

당시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다시 3.4조원을 증액해 내년 예산안은 정부 제출 예산안보다 7천억원 삭감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여당은 민주당이 요구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3천억원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역화폐'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 여당을 믿지 않았다.

이후 해가 바뀌어도 지역화폐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는 중이다.

■ 민주당, 지역화폐 강제화 추진

2024년 12월 30일.

민주당 박희승 의원 등 14명은 12월 30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지역화폐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역화폐에 사활을 거는 야당은 법안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전략을 썼다.

기존 지역화폐법 제15조는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운영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개정법률안은 '하여야 한다'로 고쳐 중앙정부의 법적인 의무가 발생하도록 했다.

또 지자체가 정부에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재정 지원 신청을 할 경우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규정을 삽입했다.

정부가 전년도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등을 반영해 다음 해 예산을 편성토록 했다. 인구 감소지역에는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추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만들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역화폐를 통한 '기본소득 사회 실현'을 꿈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은 지난해 원하는 만큼 지역화폐 예산 확보에 실패한 뒤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한 바 있다. 이후 입법을 통한 '지역화폐'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2025년에도 지속적으로 지역화폐를 포함한 조기 추경 필요성을 제기하는 중이다.

여당 정책위의장, '지역화폐' 내세운 추경에 분노

2025년 1월 7일.

이날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5일 정부에 추경안 편성을 거듭해서 촉구한 민주당 지도부는 다시 지역화폐 예산 확보를 원했다"고 비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지금 와서 다시 지역화폐 예산 확보를 위한 추경을 외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분노했다.

그가 이렇게 나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국민의힘이 2025년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지역화폐예산 3천억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예산 3.4조 증액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합의를 거부하고 2025년 예산안을 강행처리했던 전력 때문이다.

김 의장은 야당이 지역화폐를 거론하자 다시 불편한 모습을 보인 뒤 "무차별 현금 뿌리기식 낭비성 추경은 절대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재명 당 대표의 '최애' 예산에 집착하는 민주당도 비난했다.

김 의장은 "야당의 추경 편성 요구는 이재명 대표 업적 만들기에 있는 것이냐"라고 되물은 뒤 지금은 이미 편성한 예산을 조기집행하는 게 급선무이지, 낭비성 추경을 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 경제학자들은 이미 지역화폐 '경기부양 효과 없다' 결론

민주당은 그간 지역화폐는 국민 모두가 바라는 정책이라고 주장해 왔다.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경제, 골목상권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미 상당히 오랜기간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부인 2021년말 윤호중 원내대표는 "윤석열 후보도 50조원 소상공인 지원을 공언한 만큼 소상공인 정책 중 하나인 지역화폐 예산 증액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그전에 경제학자들이 '지역화폐는 경기 부양 효과 없다'고 했다가 민주당에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 효과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가 큰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2020년 조세연이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 발행이 손실과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하자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복지지출은 복지혜택에 더해 소상공인 매출 증대와 생산유발이라는 다중 효과를 낸다"면서 정부정책을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선 '엄중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필자는 경제학 박사 2명이 심혈을 기울여 쓴 보고서가 힘 있는 정치인들에게 '문책'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전문가의 논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했다.

■ 지역화폐, 국가 경제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게 '진실'

지역화폐는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행안부는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에 국고를 지원하며, 거의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도입해 운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지역화폐를 크게 늘렸으며, 중앙정부도 예산을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전체 파이' 차원에서 볼 때 지역화폐는 국가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를 띌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정책은 전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기 보다는 낙후된 지역이나 특정 경제분야를 돕는 '분배정책'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 예컨대 지역화폐는 대형마트로부터 소상공인으로의 '매출 이전'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지역 활성화'라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을 차별화하는' 지역 이기주의 성격도 있다. 외부지역으로 유출되는 소비를 제한해 지역 내 매출을 증가시키는 목적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역화폐라는 시스템이 가동하는 이상 이 체제에 편입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 비용만 커질 수 있다.

사실 지역화폐는 이름과 달리 화폐가 아니라 사용처, 기간 등이 제한된 상품권일 뿐이다.

그런데 이 상품권(지역화폐) 판매와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액면가 대비 10% 할인된 금액으로 지역화폐를 판매하고 그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지역화폐 발행을 위해선 국민 세금이 쓰이게 된다. 그리고 경제학적으로도 지역화폐는 사중손실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은 재화나 서비스의 균형이 파레토 최적이 아닐 때 발생하는 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을 의미한다.

또 지자체가 지역화폐 소지를 '강제'하기 때문에 '현금깡' 시장이 열리게 되고 이 '깡'을 단속하기 위해 행정력과 비용이 낭비된다.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지역화폐는 쇠락한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쓰이다가 많이 사라졌다.

낙후된 특정 지역이나 섹터를 돕는다는 차원에선 지역화폐가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컸던 것이다.

한국은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전세계 지역화폐의 '메카'가 돼 버렸다.

한국에선 여전히 상당수 정치인들이 지역화폐를 숭배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진실을 호도하는 짓이다.

경제학자들은 일부 정치인들의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만능키'라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 무서워서 제대로 항변을 못하고 있다.

지역화폐의 '대중화'는 법정화폐를 서서히 좀먹고 한국경제엔 득보다 실을 안겨준다. 한국식 지역화폐는 속임수일 뿐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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