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2024년 10월 10일.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놀라운 발언을 했다.
장 수석은 이날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들과 만나 "의대 증원은 2천명이 아니라 4천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 물러설 수 없는 정부의 '증원' 주장
당시 장 수석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필수가 아닌 비필수 의료로의 쏠림 현상이 고착화돼 두 가지를 살리자는 게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계산이 '정확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수석은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개인별 의료 이용량, 즉 수요가 매우 정확하게 측정되고 의사 면허 부여와 활동까지 국가가 직접 공급까지 관리하는 체제를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 장래 인구 추계와 같은 기초 데이터를 토대로 의사 인력의 수급량을 매우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4천명이 필요했으나 그나마 의료계의 반대를 고려해 2천명으로 발표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KDI 등 3개기관의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다.
장 수석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에서도 미세한 가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2035년에 약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동일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의사가 90세까지 똑같은 생산성을 가지고 일한다든지, 모든 의사가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만 빼고 1년에 265일을 줄곧 일한다는 연구 보고서상의 가점을 보다 현실에 맞게 보완했을 때 결론으로 부족한 의사 수는 2035년에 1만 명이 아니라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했다.
즉 2천 명 증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최소 4천 명 이상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지난주에도 '4천명이 원래 필요한 증원 규모였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서울대 교수들과의 토론에서 자신감을 얻은(?) 대통령실은 1주일 후에 지난 주 17일에도 같은 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대통령실은 "2035년에는 2만명 이상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교육과 인프라 제약을 고려해 2천명 증원으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다시금 KDI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2035년에는 1만 650명이 부족하다. 하지만 고령 의사의 생산성 감소, 은퇴 연령 등을 적용해 현실성 있게 가정하면 1만 명이 아니라 굉장히 그보다 많은 숫자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2천명은 '안전한' 숫자라고 했다. 즉 2천명 정도 늘려도 '질좋은' 의료 교육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 서울 의대 교수 '비용 어떻게 감당하려고?'
지난 10일 장상윤 수석과의 토론에서 강희경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의대 증원이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강 교수는 "의료 정책은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고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의료비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한국은 OECD평균에 비해 의료 비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30년에는 GDP의 16%가 의료비로 사용이 된다고 예측된다"면서 건강보험료로 지금의 1.6배를 내야 한다고 염려했다.
몇 년 후 건강보험 적자 전환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싼 의료'는 물 건너 간다고 했다. 젊은층의 의료부담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강 교수는 "젊은이들은 건강보험료를 2030년에는 지금보다 60만원, 2050년에는 200만원 더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급속한 고령화와 의료 이용량의 증가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한국에선 CT 검사가 급격히 늘었으며, 국민은 OECD 평균에 비해서 병원을 3배 더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의 의사 부족엔 동의하지 않았다.
강 교수는 "의대생은 지금 정원이 유지가 돼도 2040년에는 100명 중에 1명이 의사가 된다"면서 정원을 늘리면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했다.
'정부의 의사 부족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최근까지 OECD 국가 중 의사수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나라였다.
■ 시간을 돌려 2월 6일 문제 발생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2024년 2월 6일 오후 2시 보건의료정책심의원회(보정심).
대략 1시간 가량의 회의가 진행된 뒤 정부는 2천명의 의대 증원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참석 위원 23명 중 19명의 찬성과 4명의 반대로 2천명 증원이 의결됐다고 전했다.
오후 3시 정부는 긴급 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위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2천명 증원을 결정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2006년부터 19년 동안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면서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이룩한 우리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며, 충분히 상의·숙의한 결과라는 점도 강조했다.
당시 정부는 "지난해 10월 26일 의사인력 확충을 위한 2025학년도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했으며,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았다.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130차례 이상 소통했다고 홍보했다.
2023년 1월부터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발족해 총 28회 소통했고 대한병원협회, 종별 병원협회 등 병원계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또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산하 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심도 있는 검토와 사회적 논의를 진행했으며 지난달까지 총 10차례의 지역 간담회를 개최해 지역이 처한 필수의료 위기에 대한 현장의 의견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정부의 발표를 들은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국민건강을 위한 의대 증원에 진심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정부는 나아가 "의사들이 지역과 필수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주(증원 발표 전주) 민생토론회를 통해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국민에게 설명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계는 정부의 설명을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수의 국민과 언론은 정부 편에서 의사들을 돈만 밝히는 자들이라고 조롱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만,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포퓰리즘을 통해 얻은 인기, 그리고 포퓰리즘으로 쌓은 성은 무너지는 법이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400명 증원에도 실패했는데, 과연 2천명 증원이 가능할까 의심했다. 아울러 그 계산식도 궁금했다. 당시 정부의 설명은 이랬다.
"정부는 10년 뒤인 2035년 수급전망을 토대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결정했습니다. 현재 의료 취약지구에서 활동하는 의사인력을 전국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약 5천 명이 필요합니다.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의료수요를 감안할 경우 2035년에 1만 명 수준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습니다. 부족하나마 1만 5천명의 수요 가운데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인력을 확충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해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합니다.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돼 2035년까지 최대 1만 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입니다."
지역 배려 의지도 강조했다.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집중 배정한다는 원칙하에, 각 대학의 제출 수요와 교육 역량, 소규모 의과대학의 교육 역량 강화 필요성, 지역의료 지원 필요성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입학 시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이 충원되도록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제 모든 국민들께서 살고 계시는 지역에서 제때 진료받으실 수 있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반드시 구축하겠습니다."
■ 2천에서 4천 오락가락 하는 '수치'
올해 2월 정부의 2천명 증원 주장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번에 정부가 '진짜 필요한 수치는 4천명'이었다고 해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지금처럼 의료 붕괴가 일어나는 시기에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또 현재 의대 정원이 3천명 수준인 상황에서 필요한 증원 규모가 2천명에서 4천명으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결국 정부 증원엔 아무런 논리가 없다. 2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가, 4천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제멋대로 통계를 부풀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돈만 아는' 의사와 '권력 맛만 아는' 공무원들 사이에 누가 더 심각한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는지 판단해 보라고 했다.
"지금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죽어가는 마당에 장 수석 같은 자들은 여전히 자신들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의사가 악마입니까, 이런 사람이 악마입니까?"
■ 2천명 늘려도 충분히 질 좋은 교육?...거짓말
정부는 그간 2천명을 증원해도 충분히 더 질 좋은 의료 교육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산수'를 하는 사람들이나 의대 교육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발표들이 이어졌다.
'의대 5년제', '한의사 2년 교육시 의사면허 발급'과 같은 납득하기 힘든 얘기들이 들려왔다.
급기야 의대 5년제에 대해 주변에선 '한국에선 의사가 동물 목숨을 다르는 수의사(6년)보다 덜 배워도 되는가'라는 식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부의 거듭된 똥볼차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제 의사들의 말을 수긍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다.
반응이 좋지 않자 정부는 의대 교육 5년 단축안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거짓말이었으며, 언론들이 오보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10월 6일 정부가 발표했던 보도자료를 보자.
보도자료(정부의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 방안'의 9페이지) 내용엔 이런 문단이 나온다.
< □ 의료인력 양성 공백 최소화를 위한 교육과정 탄력운영 지원
º 대학 현장과 협력하여, 원활한 의료인력 양성 및 수급을 위한 교육과정 단축·탄력 운영 방안 마련(예: 현행 6년→최대 5년) >
정부는 의대 교육 5년 단축을 언급한 적도 없는데 언론이 잘못 보도했다고 언론 탓을 했지만, 보도자료엔 '충분히' 기자들의 구미를 당길 수밖에 없는 발표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6일 이 보도자료를 발표할 당시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향후 시행령 개정과 같은 제도 개선 추진까지 거론한 상태였다.
급하다 보니 정부가 '일단 던져보고', 반응이 안 좋으면 발뺌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오보는 언론보다 정부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 여전히 부실한 보고서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정부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문제의 보고서들'은 의료계에서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의대 증원과 관련해선 '증원, 감원, 동결'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권정현 KDI 연구원, 홍윤철 서울대 교수,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의 보고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심지어 보고서를 쓴 사람들이 '2천명 증원을 주장한 건 아니다'라고 한 발 뺐으나, 정부는 이런 보고서들에 기반하면 4천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논리학 수업을 받을 때 이런 식의 억지를 부리면 F 학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정책 당국자들은 여전히 A학점을 기대하는 학생 마냥 자신만만해 보인다. 의료 시스템이 빠르게 붕괴되고 있지만 '의사 위에 군림하는' 멋진 공무원들 답게 여유마저 느껴진다.
■ 한국의 기이한 의학 교육 실험...'주차장에서 의사 길러내기'
지난 18일 국정감사에선 의대생을 대폭 증원한 충북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충북대는 의대 신입생 정원을 49명에서 200명으로 대폭 증원하는 곳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인프라는 갖추지도 않고 총장이 '돈벌이'에 몰두하는 듯이 보였다.
고창섭 총장은 "부족한 교육 공간 확보를 위해 건물을 신축할 것"이라며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주차장 용지에 대체 교육시설을 마련해 29년도까지는 해부학 실습을 시킬 것"이라고 했다.
건물 신축에만 4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총장의 대책이 '주차장 활용'이었다.
교육 공간, 교수, 기자재 등도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증원에만 눈이 먼' 대학 총장의 이기심도 한국 의료 교육 붕괴에 한몫 하고 있다.
하긴 정부가 '충분히 의견 들었다'고 한 주체가 병원장이나 총장 등 의료진과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올해 의대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았으며, 남학생들의 상당수는 안타까운 시간을 아끼고자 '1년반 짜리' 군복무를 하러 떠났다. 정부는 또 필수 의료 분야 리스크가 커지자 지역의 낙후된 곳에서 일하는 공보의를 차출했다.
앞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더 위태로워질 것이며, 군인들도 부상이나 질병을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워진다.
또 당장 내년 수업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가 없다.
올해 휴학한 학생들에 내년 4,500명에 달하는 신입생들을 어떻게 함께 교육시킬 것인가.
결국 수급이 틀어지다 보니 억지로 의대 5년째, 한의사 2년 추가 공부시 의사 면허 발급과 같은 무리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또 '주차장 의사들'에게 면허를 주기 위해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같은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장태민 칼럼) 2천명과 4천명 '고무줄'...그리고 주차장에서 의사 길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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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2천명과 4천명 '고무줄'...그리고 주차장에서 의사 길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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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올해 2월 22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의료계 소통 부족? 증원 규모 과다? → 의료개혁에 대한 오해와 진실 Q&A'
(장태민 칼럼) 2천명과 4천명 '고무줄'...그리고 주차장에서 의사 길러내기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