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9-17 (화)

(장태민 칼럼)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없는 이유

  • 입력 2024-09-06 15:4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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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정부가 '의대 증원'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언론들은 연초 정부의 '의대 증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다가 최근엔 하나, 둘 씩 '이게 아닌가봐'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중이다.

정부가 의료개악을 의료개혁이라고 주장하면서 밀어 붙인지 이미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은 주변의 한명, 두명 씩 이 문제를 새롭게 보고 있다.

그간 의사 악마화에 동참하면서 '돈 잘 버는 엘리트들을 멍석말이하는 즐거움'에 취해 있던 지인 중엔 주변에서 누군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자 긴장하기도 했다.

여전히 정부는 의사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책임은 엄연히 한국 정부에 있다.

연초 뜬금없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정부였다.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에 호응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는 사실 너무 염치없는 행동이다.

■ 의사들은 지금 싸우고 있지 않다...정부만 그림자와 싸우는 중

전날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이제 과거와 같은 한국 의료시스템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접한 뒤 다시금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의사는 '애초부터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었다'고 했다.

김경렬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5일 "본격적인 의료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최근 임산부가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고 뇌졸중 환자나 소아 환자들이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모습 등에서 이 의사는 한국의료의 '붕괴'를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등 이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은 여전히 '개혁의 완수'를 다짐하고 있다.

심지어 이 사태와 관련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장관은 논란이 되자 자신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다.

아무튼 의사들을 '이기주의에 물든 개혁 저항 집단'으로 매도한 사람들은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총리, 복지부의 수많은 공무원들, 교육장관, 대통령실 인사들, 각종 여야 정치인 등 너무나도 많다.

김경렬 원장은 대통령 등 정부 사람들이 '특정직역에 굴복하면 비정상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내비치는 등 의사들을 이겨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김 원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정부가 의사들과 싸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사회 갈등을 '대립구조'를 보는 데 익숙한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 말은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김 원장은 다시 한번 친절하게 설명한다.

"지금 의사들은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도망갔을 뿐입니다. 최근 응급의료의 붕괴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생겼나요? 아니죠. 그냥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소송 위험 때문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개개인이 응급의료를 포기하고 떠나고 있는 거죠. 지금 임산부가 구급차에서 출산하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맞서 싸우기 때문일까요? 아니죠. 십수억을 배상해야 하는 소송 리스크와 박민수 차관이 시행한 포괄수과제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을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아 중증 환자들이 치료받기 어려운 게 소아과 전문의들이 정부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죠. 이대 목동병원 소아과 교수님이 감옥에 가시는 것을 보고 젊은 의사들이 소아 진료를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도 전남대 소아외과 선생님이 잘못은 없지만 배상은 하라는 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받았죠. 몇년이 지나도 변하질 않네요. 그나마 체포는 안 됐으니까 좀 나아진 건가요?"

이 쯤 되면 사람들도 이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착착 진행되는 의료 붕괴는 의사집단이 정부에 맞서 싸우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 개개인이 정부정책 또는 법원의 판결에 '굴복해서' 내가 힘들게 수련했던 특정 의료를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의료개혁(!)의 중대한 방향 중 하나인 소위 '내외산소' 등 필수 의료진 확보도 당장 의대 증원 따위로 풀 문제가 아니었다. 증원을 하더라도 한 학생들이 '의사 1명' 몫을 하는데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다.

사실 지금도 이런 분야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의사들은 사법 리스크나 의사 노동의 고됨, 돈벌이의 정도 등에 따라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을 높이는 등 메리트를 높이면서 접근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소위 의료개혁에 경도 돼 자신들이 만들어낸 망상과 싸우고 있었다.

■ 근거가 되는 '산수 공식'도 없고...정부의 끝없는 쉐도우 복싱

김 원장은 전공의 사직 사태도 정부가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2천명이라는 전혀 근거없는 숫자, 낙수의사라는 정부의 낙인,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여러가지 명령들, 거기에 합세한 언론의 의사 악마화를 보면서 전공의들이 힘든 수련을 포기하고 떠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인기과 중엔 일부 돌아온 전공의들고 있지만 소위 '낙수과'라고 불리는 바이탈과 전공의들은 정말 포기하고 떠났다고 했다.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을 바이탈과라고 부른다.

바이탈과 의사수 부족이 문제였지만, 정작 정부는 바이탈과 전문의들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그들을 떠나보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인 등의 '선동'에 속아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조롱과 멍석말이의 굿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 원장은 나아지지 않는 사실을 담담하게 비유했다.

"정부는 아직도 의사집단을 이겨야 한다, 굴복하면 안 된다고 하고 있지만 상대가 없는 쉐도우 복싱이죠. 의사들은 정부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정부정책에 굴복해서 전공을 포기했을 뿐이죠."

■ 통일된 대안을 가져오라? '통일된 대안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대통령과 복지부 관료들은 의료계가 통일된 대안을 가져오라고 쉼 없이 다그쳤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의사 집단의 실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었다. 김 원장은 말한다.

"대통령이 가져오라는 의료계의 통안된 대안 같은 게 있을리 없죠. 각자 살길 찾아 떠난 건데..."

이미 여러차례 의료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도 알 만큼 알 것인데, 굳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것도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싸움의 실체도 불분명한 데다 의사 집단이 단일대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정부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의사협회, 전공의 협회, 교수 협회, 봉직의 협회, 병원 협회 모두 입장이 다릅니다. 병원 협회 같은 경우는 아예 정부 편이죠. 사용자 측이니까. 그래서 의료계의 통일된 대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 사회'의 기본적인 구조도 이해하지 못한 채 의사들과 논의를 충분히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의료 사회의 구조를 알면서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정부는 병원장과 협의한 뒤 의료계와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밝히는 등 지속적으로 현장 의사들의 염장을 질렀다.

정부나 정치는 '문제 해결'을 하라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정부는 윽박지르는 데만 익숙했으며, 정치권은 관심 자체가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당의 대표도, 야당의 대표도 별 관심이 없이 '이미지 정치'만 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환자들에게 위험이 닥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의료문제에 관심이 있는 척' 하고 있다. 20대보다 21대, 21대보다 22대가 더 퇴보한 한국 정치의 역겨운 행태다.

■ 한국의료 이미 '화양연화'는 끝났다...전공의는 못 돌아간다

한국 의료의 화양연화는 이미 끝이 났다는 평가들도 나온다.

이제 한국인들은 더 이상 전세계에서 가장 싸고 빠르게 좋은 진료를 받았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우울한 전망들이 적지 않다.

물론 여전히 정부가 의사 집단과 협의를 하면 '최소한' 과거로는 돌아가 지금의 의료농단이 아닌 '진짜' 의료개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비관론'이 우리의 미래에 더 가깝다는 입장을 취했다.

"정부 측에선 임현택 의협 회장이나 박단 대전협 전회장과 담판을 지어서 합의를 보면 이번 사태를 봉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공의들은 대표의 명령으로 사직한 게 아닙니다.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그만둔 것이죠. 본질적으로 젊은 의사들이 소아과에 지원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다만 그게 정부 정책에 의해서 너무 급격하게 진행됐을 뿐이죠."

필자가 아는 한 50대 외과 전문의는 지금의 '젊은' 의사들은 자신과 같은 옛날 의사들과 많이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처럼 상명하복 분위기를 조성해 각종 명령을 남발하면 '젊은 의사들'의 적개심만 키우고 문제만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설령 누군가 의사대표라고 나서서 정부와 합의를 하더라도 그게 아무런 의미다 없다는 것을 전공의들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의사들은 '정부의 거짓말'에도 이미 익숙해 있다.

"2020년 공공의대 사태 때도 합의를 했지만 전혀 지켜지질 않았습니다. 약속과 계약을 지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데 정부가 이걸 지키지 않으니까 참 할말이 없죠. 그래서 정부가 어떤 약속을 하더라도, 정치인들끼리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의사들은 이미 과거에 정부로부터 여러번 속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와 언론 등의 의사 악마화 속에 많은 국민들은 의사 멍석말이를 마치 국민 스포츠인 것처럼 즐겼다.

또 젊은 의사들에겐 수술에 따른 사법 리스크외에 또 다른 사법 리스크가 있다. 정부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 놓고 왜 안 돌아오느냐고 다그쳐 왔다. 김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전공의들이 단체로 병원에 돌아간다면 소송 리스크가 있습니다. 정부가 환자 개개인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주면서 고소를 권유했었고 환자단체와 보건의료 노조도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으로 피해를 봤다고 고소하려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의약분업 사태 떠올려보자

그러면 한국 의료는 미래는 어떻게 될까.

김 원장은 2천년 의약분업 사태를 보면 다소간 예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의약분업 사태는 1999년 8월 보건복지부에서 최종시행안을 확정한 뒤 같은 해 12월 의협을 중심으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가 결성됐고 2000년 4월 개인 병의원을 중심으로 휴진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6월부터 대학병원 전공의와 교수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사태가 심각해지자 6월 24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청와대에서 긴급 영수회담을 열고 의협의 요구를 수용하는 약사법 개정을 7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의사파업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실 지금의 의사들이 한국 정치인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부터 여러차례 정치권의 뒷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의약분업 사태 당시 진행된 약사법 개정에서 의료계의 요구가 거의 반영되지 않고 뒤에선 검찰이 사법처리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당시 김재정 의협회장을 비롯한 의협지도부를 구속시켜 버렸죠. 통수가 얼얼합니다(웃음). 당시 의협지도부를 기소한 검사가 윤석열 대통령이고 의쟁투의 신상진 위원장, 현 성남시장의 변호사가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라는 사실이 참 재밌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뭔가 좀 비슷하지 않느냐고 했다.

"당시 지도부 구속에 대한 반발로 개원의들이 폐업투쟁을 선언했고 전공의, 전임의들은 대학병원을 나왔고 의대교수들은 외래진료를 중단했습니다. 대학병원이 마비되고 중소병원들의 줄도산이 시작되자 정부 태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8월 김재정 의협회장이 보석으로 출감되고 9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앙일보와의 특별회견에서 '조금 안이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면서 사과 비슷한 발언을 하면서 의정대화가 시작됐습니다. 2000년 11월 11일 의약정 합의안이 도출됐습니다. 이후론 의료계 내부 갈등은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큰 혼란은 없었고 각각의 의사들은 변한 의료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실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란 '개혁' 이후 비용은 늘어나고 국민들은 불편해졌다. 의사 악마화의 추억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얼마나 국민들에게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다. 김 원장은 말한다.

"의약분업 사태가 일단락된 이후로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급증했습니다. 제가 볼 땐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인데, 2002년 KBS 9시 뉴스...(등에서 떠들었습니다)"

■ 정치인 문제해결 능력, 2000년보다 훨씬 후퇴

김 원장은 위기에 처한 한국 의료의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 과거의 스토리를 계속 얘기했다.

"2000년 당시 의협지도부를 포승줄에 묶어서 구속까지 시킨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달라진 계기는 대학병원의 마비와 중소병원의 줄도산이었습니다. 현재 그 직전까지 와 있다고 봐야죠. 대학병원의 응급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있으니까. 다만 그 과정은 다릅니다. 의약분업 때는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전임의, 교수들까지 의료계 전반이 원팀을 이뤄서 정부 정책에 대항했던 느낌이라면 현재는 각자도생으로 가고 있습니다. 개원가는 잘 돌아가고 있죠. 교수들도 개개인이 사직하는 경우는 있어도 어떤 단체적인 움직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의협과 전공의 협회도 서로 교류가 없고 오히려 사이가 좋지 않죠. 그리고 전공의 선생들은 'USMLE'를, 의대생들은 수능시험과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내부에 어떤 구심점이 없어요."

그렇다고 정부측에 강력한 구심점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이번 사태 초반 여론몰이를 담당했던 김윤 교수는 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이 됐고 중대본 브리핑을 담당했던 보건복지부 전병왕 정책실장은 명예퇴직한 뒤 심평원 이사로 영전하셨죠. 박민수 차관은 전라도에 국립의대를 신설하겠다고 민주당에 줄을 대고 있는 듯 하고요. 한덕수 총리는 총선 직후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사직금리 명령이 발동되서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어요. 기재부에서만 근무하셔서 의료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셨을 것 같은 조규홍 장관은 좀 억울할 것 같은데, 퇴직후 전임자들처럼 보험사 사외이사 자리로 가시는 게 제일 무난하겠죠."

현재 정부측 인사들도 원팀이 아니며, 앙시엥 레짐 붕괴 이후 각자의 살길을 찾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필자는 이번 사태가 2000년 의약분업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한국 의료시스템에 큰 생채기를 낼 수 있을 듯해 걱정스럽다.

의료 개혁을 한답시고 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감이 없는 데다, 정책을 이끌어갈 동력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정치에 대해서도 빠삭해 보였다. 한국에선 의료의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선 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00년 당시처럼 지지율이라도 높은가, 그게 아니라면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있는가, 둘다 아니죠. 지금 지지율 23%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중앙일보 특별회견에서 사과 비슷한 말씀이라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사과 비슷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근 기자들에게 의료 현장을 가보라는 말씀을 하신 걸 보면 인사이트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의료붕괴는 막을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비상 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정부, 의료진의 신뢰 상실

지금 정부는 2026년 의대 정원 재조정은 가능하다면서 전공의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저는 2025년 증원을 철회하더라도 사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간 정책당국자들이 너무 감정적인 언플과 거짓말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박민수 차관 등이 나서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겠다, 법정최고형을 내리겠다, 전세기를 띄우겠다, 일반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한 언플이었지만, 의료인들에겐 속이 뻔하게 보이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필자는 특히 지난 3월 17일 박민수 차관이 했던 말이 치명적이었다고 본다.

당시 박 차관은 "대한민국에 의사가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는다면 전세기를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실어날라 치료받게 하겠다"고 했다.

이 말은 박 차관이 "정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에 대해선 의사들이 다 책임져야 할 것"이라면서 했던 말이다.

당시 16개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사직서를 내겠다고 하자 박 차관은 "국민에 대한 겁박이자 법치에 대한 도전"이라며 "날짜를 정해놓고 모여서 회의를 하고 사직서를 내기로 결의하지 않았느냐. 이건 집단행동이 좀 분명하다. 이게 실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실현된다면 법적인 여러 조치 사항들을 가지고 막아내겠다"고 했다.

차관은 의대 교수 비대위 협의조건인 '의대 증원 2천명 수치 조정'에 대해선 '협상 불가' 입장을 취하면서 "국민 생명을 담보로 정부 정책을 무릎 꿇리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그런 요구엔 정부가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말은 역대 가장 힘 센 차관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박 차관을 두고 장관을 능가하는 '왕차관'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박 차관 말대로 지금 정부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민 생명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김 원장은 국민 모두가 아는 이국종 교수 얘기를 꺼내면서 국민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이국종 교수가 했던 말은 '강경 의료개혁'의 상징인 박 차관의 발언에 오버랩된다.

"4년 전 이국종 교수가 복지부는 숨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이라고 하고 교수직을 그만뒀죠. 이국종 교수도 정부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본인이 힘들게 수련한 중증외상 진료를 포기하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시죠.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 보입니다."

월급 400만원 정도 받는 전공의에 대해 연봉 3억5천, 4억원을 받는다면서 의사 악마화 선동에 앞장섰던 '의료 사회과학자' 김윤 의원의 흥미로운 스토리도 다시한번 상기시켰다.

"정부 측 뿐만 아니라 지금은 반대 편(민주당)으로 넘어간 김윤 의원도 몇 년 전엔 의대 증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사태 초반에는 2천명이 아니라 4천명을 늘려야 된다고 했다가, 야당 국회의원이 된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너무 과도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어요. 한 사람의 의견이 이렇게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 앞으로 한국민은 그렇게도 원했던 'OECD 평균 의료' 맛볼 차례

김 원장은 향후 의료붕괴 후 새판이 짜지면서 공공의료와 민영의료가 투트랙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봤다.

물론 이러면 엄청난 사회 혼란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번 '의료개혁'이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 밖에 없었던 미래로 보인다.

국민들은 '돈 보다 목숨'이라며 의료개혁에 나섰던 성리학자들을 편들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인들은 앞으로 '목숨에도 가격이 책정돼 있는'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김 원장은 한국 의료가 공공과 민영 투트랙으로 가면서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대학병원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일자리를 잃고 예전이라면 치료받을 수 있었겠지만, 치료 못 받는 환자들이 늘어날 겁니다. 이미 늘어나고 있죠. 대신 민간보험사들은 큰 이득을 보겠죠. 치료비로 줘야되는 보험금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건보재정이 28년 고갈될 예정이기 때문에 일본처럼 의사수를 줄이지 않는다면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 OECD 평균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OCED 평균'을 원했으니(!)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의료개혁에 한국인들이 '열렬히 찬성했던 만큼' 한국인들은 줄어든 의료 혜택과 높아진 의료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여유가 좀 있는 분들은 영리병원에서 빠르지만 좀 비싼 의료 서비스를 받고 여유가 없는 분들은 좀 많이 기다렸다가 공공병원에서 저렴하게 또는 공짜로 무상의료를 받는다, 이게 OECD 평균입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의료로 알려진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모두 이런 영리병원이 운영되고 있고 그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진국 중 영리병원이 허용이 안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고 두 나라의 인구 천명당 의사수는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의사수를 줄이고 있죠. 현재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지만 OECD 평균으로 가기 위해서 의사수를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고요. 지금은 OECD 평균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에 있는데, 그 방향은 이번 사태 초반에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정책 패키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큰 방향은 미국식 포괄수과제 도입과 급여와 비급여의 혼합진료 금지,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의료시스템 개혁(개악)을 받아들이는(!) 김 원장의 담담한 소회를 들으면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 생각이 났다.

필자의 친구는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 친구가 2년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의료시스템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의료야 세계 최고지. 하지만 최고의 의료 기술을 가진 이 나라에선 안타깝게도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해. 한국처럼 돈 좀 없어도 당당하게 환자가 내 목숨 살려내라고 요구할 수가 없는 나라지. 그리고 박사 학위를 위해 공부했던 영국은 한국에 비하면 사실 의료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지. 그 곳은 중병에 걸려도 언제 치료를 받을지 알 수 없는 나라야. 영국 의대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오고 영국은 의사들을 상당부분 수입해서 활용하지. 한국 사람들이 의료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하지만,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가진 유일한 나라일 거야."

올해 초 이 사달이 난 뒤 그 친구와는 얘기를 못 해 봤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조금만 더 한 뒤 국내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지만, 그가 이젠 딴 마음을 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 원장은 OECD 평균을 지향하는 한국인들을 크게 계몽할 의도도 없어 보였다. 현실, 그리고 미래를 받아들이는 한 전문의의 차분한 얘기는 오히려 필자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저는 OECD 평균의료가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국가의 의료체계나 장단점이 있는 거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사태 초반 의대 증원을 찬성했던 89%의 국민 여러분은 OECD 평균 의료체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알고 계셨을까, 저는 대부분은 모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공무원이 누군가에게 충성하기 위해 주권자인 국민에게 제대로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죠. 어쨌든 최근 응급의료의 붕괴로 지금은 병에 걸리면 정말 큰일이 나는 시기니까 사고 유의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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