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1-15 (수)

(장태민 칼럼) 유사과학으로 날린 돈 1.5조원

  • 입력 2024-08-14 15:2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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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오래전 군(郡)에서 실시하는 과학경시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세대는 '물상'이라는 과목을 배웠으며, 경시대회에선 현미경 활용법과 '농도 측정'에 관한 문제가 나왔다.

어떤 물질을 물에 녹일 때 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계산하는 문제였다.

당시 우리는 유해 물질이 있다면 신체에 안전한 농도까지 희석하면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뒤 필자가 알던 이 과학은 '과학을 빙자한 사기'라고 지탄을 받았다.

■ 진성준의 낯선 과학이론, "위험물질은 희석시켜도 위험하다"

2023년 9월 13일 국회.

화학자 출신의 환경전문가 한화진 장관이 야당 의원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한 장관은 고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뒤 석사를 취득한 인물이었다. 미국 UCLA 대학원에서 물리화학 박사까지 취득한 '과학자' 출신의 장관이었다.

하지만 장관이 알던 과학 이론은 한국의 뛰어난 국회의원에 의해 일거에 박살나고 만다.

지금도 진성준 의원의 매섭고도 논리정연한(!) 주장이 생각난다.

"핵 폐수에 섞여 있는 방사성 물질을 제 아무리 희석해서 바다에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방사성 물질 총량은 변함이 없다. 바다 속에 들어가는 방사성 물질 총량은 변함 없는 것이다."

진 의원은 국민의 70%가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을 모르는 장관'이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진 의원은 뛰어난 논리와 함께 인류애와 도덕심까지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희석해서 기준치 이하로 낮춰서 내보낸다고 하면, 세상의 어떤 폐기물도 희석해서 버리면 다 되는 것 아니냐. (일본의 오염처리수 방류는) 인류 모두의 자산인 바다를 왜 오염시킬 수 있다. 야당과 국민의 주장이 이러한데, 기준치 이하로 희석시키는 게 안전하다, 과학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데 이게 환경부 장관이 할 소리냐."

환경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켜야 하는 장관이 이런 답변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과학을 수십년 공부한 장관을 앞에 두고 '과학을 전혀 모른다'을 맹비난했다.

"장관이 이렇게 비과학적인 답변을 해서 되느냐. 제 아무리 희석시켜도 총량이 줄어드느냐"

당시 이런 질타를 들으면서 필자는 유년기 과학경시대회 출전 때가 생각났다.

아, 당시 우리의 뛰어났던 시골 학교 선생님도 잘못 가르쳤던 것이구나.

진 의원은 4월 총선에서도 당당히 당선된 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힘 있고 인기 있는 정당의 정책위의장이 됐다.

뛰어난 과학자마저 굴복시킬 정도로 새로운 과학이론을 개발한 인물인 만큼 원내에서 야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듯했다.

■ 한국 정치판에 등장한 '낯설게 하기' 화법의 개발자

당시 필자는 진 의원이 새로운 과학 이론을 창설한 만큼 그가 어떤 공부를 했는지 궁금했다.

진 의원의 이력을 찾아보니 전북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녕 법이 과학을 이길 만큼 강력하다는 말인가.

아니, 필자는 곧 판단을 수정했다. 한국에선 법보다 정치가 더 우월하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법 조문 좀 외웠다는 자들 중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또 정치력만 있으면 법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진 의원은 대학 때부터 학생운동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군 입대 이후엔 인권 문제로 한국 군대와 다투다가 3년 넘게 육군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런 뒤 현재는 야당을 대표하는 뛰어난 정치인이 됐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과학과 법, 정치 모두를 아우르는 실력을 겸비하게 됐다.

그 뿐이 아니었다. 부동산 등 경제문제에도 해박했다. 한국 정치판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급 인물이었다.

'흙 속의 진주'였던 진 의원이 한국민 전체가 존경하는 대스타가 된 계기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 사건이었다.

당시 그가 TV에 나와 구사했던 인상적인 '대화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7·10 부동산 대책에 대해 진 의원은 "다주택자나 법인의 투기 수요를 막고, 실수요자에게 집이 돌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정책을 꺼내든 만큼 이제부터는 집값을 잡아갈 수 있는 기본 틀을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토론이 일단락된 뒤에 사람들이 본질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마이크가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 의원은 "그래도 집값은 안 떨어진다"는 진실을 전국민이 알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가 '산파술'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드는 화법을 개발했고 20세기 들어선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사람들이 진실을 찾도록 도왔다.

한국의 뛰어난 팔방미인 진성준 의원은 21세기판 '소격효과'를 시연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깨어나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진 의원은 지금도 친숙한 현실과 거리두기, 연기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 벌리기를 통해 사람들이 진실을 보도록 계몽하는 중이다.

■ 유사 과학이 득세하는 시대...허공으로 날라간 1.5조원

2023년 6월.

난데 없이 천일염 논란이 불거졌다.

오염처리수가 방류되면 삼중수소가 천일염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천일염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

결국 정부는 세금을 들여 천일염 공공 수매에 나서야 했다.

지난해엔 '후쿠시마 오염수(오염처리수) 논란'으로 어민들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이 논란이 일 때 '정통' 과학계는 후쿠시마 방류 문제와 관련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물론 일부 정치 바닥을 기웃거리는 '정치' 과학자들이 유사 과학을 유포하면서 특정 정치집단 편들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다만 이런 사람들은 과학계의 인정을 못 받는 사람들이었다.

특정 정당이 좋고 싫음에 따라 '과학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다.

지난해 8월 24일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해양 방류를 개시한 뒤 야당과 시민단체는 끊임없이 "방사능 범벅 물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정부가 한국과 일본 수산물, 천일염, 바닷물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사를 총 4만회 이상 실시한 결과 방사능 기준치에 근접한 검사 결과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해류의 흐름 등을 볼 때 오염 처리수 방류가 악영향을 미친다면 미국 등 다른 나라들도 크게 소란스러워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한국만 홍보비 등으로 3년간 1.5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산물 안전성 검사, 판촉 행사 등으로 내다버린 돈이 1조 5천억원에 달했다.

지난 2021년 일본이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 계획을 발표하자 이듬해 약 3천억원, 지난해 5천억원 남짓의 예산이 투입됐다. 올해 편성된 돈은 7천억원이 넘는다.

논란이 없었다면 아낄 수 있었던 피같은 세금이 나간 것이다.

■ 과학과 정치의 이상한 '통섭'은 국고만 낭비할 뿐

전날(13일) 국회 외통위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출석해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은 "일본 오염처리수 4만건 이상을 검사해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나왔다"면서 민주당이 퍼트린 괴담 때문에 엄청난 국고가 낭비됐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괴담으로 인해 1.5조원에 달하는 헛돈을 날린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국민 정서 때문에 그런 요인이 발생했다"고 답했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진성준 의원이 제시한 '새로운 과학이론' 보다는 여전히 '정통' 과학자들의 말이 훨씬 신뢰가 간다.

우리가 과거에 인정했던 과학자들의 말을 믿었으면, 1.5조원은 낭비할 필요도 없었던 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은 진성준 의원 등이 구축해 놓은 '새로운 과학'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까지 '통섭' 이론이 유행하기도 했으나 과학과 정치가 교접해서 만든 변종 이론은 국고만 축내는 잡탕일 뿐이다.

필자는 유년 시절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때 배운 초보적인 과학적 지식이 사리를 분별하는 데 기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유년기 과학경시대회의 기억을 떠올려 답안의 첫머리를 작성해 본다.

"유해 물질을 희석해서 농도를 낮추면 인체에 미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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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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