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스라엘 매체 THE TIME OF ISRAEL이 전쟁 상황을 긴박하게 업데이트하고 있는 모습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이-팔 전쟁과 금융시장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이스라엘 남부와 가자지구에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레바논 남부 지역에 근거를 둔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포격하면서 자칫 전쟁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 지원을 천명했고 독일은 팔레스타인 지원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란은 전쟁의 책임이 이스라엘에 있다고 비난하면서 무슬림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지원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무력 충돌은 국제정세와 얽혀 서방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들간의 블록 대치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중국-러시아-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들간의 편 먹기와 대립 강화 가능성, 그에 따른 세계경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금융시장에선 안전자산선호 분위기와 유가 움직임이 관건이다.
■ 이-팔 전쟁, 그리고 금리 급락
미국채 시장이 9일 '콜럼버스의 날'을 맞아 휴장한 가운데 유럽 금리는 급락하면서 일단 전쟁의 금융시장 영향엔 '안전자산선호'가 먼저 작용한다는 점을 알렸다.
독일 국채10년물 금리는 9일 11.20bp 급락한 2.7715%, 2년물은 9.93bp 하락한 3.0319%를 기록했다.
프랑스 국채10년물 금리는 12.36bp 급락한 3.3522%, 2년물은 7.06bp 하락한 3.3270%를 나타냈다.
영국 국채10년물 금리는 8.84bp 속락한 4.6351%, 2년물은 2.49bp 떨어진 4.5803%에 자리했다.
전쟁 소식에 서구권 금리가 급락한 가운데 국내 금리시장도 큰폭의 강세로 시작했다.
미국 고용지표 영향에 미국채 금리가 뛰었지만 주말에 터진 이-팔 전쟁이 일단 더 예민한 재료로 받아들여졌다.
투자자들은 당장은 크게 두 가지, 즉 전쟁이 이끌 안전자산선호 현상과 유가 급등 가능성을 주목하는 중이다.
증권사의 한 채권중개인은 "일단 미국 고용지표 서프라이즈로 금리가 뛰었지만 연준 관계자들이 도비시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이를 일부 누그러뜨렸다"면서 "이후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해 미국장이 휴장하는 사이 유럽금리가 급락해 국내시장도 일단 이를 먼저 반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 이-팔 전쟁, 안전자산선호 속 주가에도 나쁘지 않은 환경이란 주장도
이-팔 전쟁의 금리시장 영향을 두고 투자자들은 강세와 약세 요인이 모두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아울러 시간 변수도 감안하고 있다.
당장 유럽이나 국내 금리시장 급락을 보면 안전자산선호가 가까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주말 사이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우려도 단기간 안전자산선호로 금리를 하락시키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두 나라 모두 산유국이 아닌 가운데 전일 국제유가 상승에도 안전자산 선호로 금리가 하락한 모습에서 보듯이 전쟁이 확전되거나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물가 우려보다는 안전 자산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톰 리 펀드스트랫(FS) 글로벌어드바이저 대표가 "이스라엘-하마스 교전이 리스크오프 환경을 이끌면서 금리 하락과 주식 강세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와 주가의 동시 강세를 예상한 것이다.
그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왜 주식시장에 좋은 지에 대해서 분명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위험한 자산을 매수하는 것을 꺼리는 '리스크오프' 환경에서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할 수 있어 주식도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톰 리는 "채권 랠리는 지난 한달간 이자율 시장을 지배했던 채권 매도세를 꺾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4.8%대로 올라선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이-팔 전쟁, 유가급등으로 이어지면 금융시장 악재
하지만 이 전쟁이 유가를 끌어올리게 되면 금융시장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중동정세 악화로 9일 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장 대비 3.59달러(4.34%) 급등한 배럴당 86.38달러를 기록했다.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도 이날 4%대 상승률을 기록하며 배럴당 88.15달러에 거래됐다.
이번 전쟁이 단기간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는 쪽에선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러면 물가와 금리 때문에 애를 먹은 주식시장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유가 오름세는 공급 축소와 수요 증가의 합작품이었다. 여기서 지정학적 리스크 출현으로 유가 하방 경직성이 높아졌다"면서 "고유가 흐름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이스라엘 지원을 천명하면서 향후 전선 확대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안전자산선호를 기대할 수 있지만, 고물가와 고금리 고착화 우려가 높은 상황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태는 마냥 미국 국채 금리 하락 요인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유가에 더욱 민감한 경제 구조란 점에서 국고채 금리 상방 압력 자극 요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또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우크라이나와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재정적자가 더욱 늘어나게 해 국채 발행 증가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고용지표와 전쟁 발발이란 대형 재료 속에 이틀간 뉴욕 주식시장은 상승했다. 당장 미국 주식시장이 흔들리지 않자 국내 주식시장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 이상 뛰었다.
■ 이-팔 전쟁, 불확실성 지속
7일 발발한 이-팔 전쟁은 1973년 10월 6일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지 50년만에 발생한 최대 규모의 교전이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으면 저가매수의 기회였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충돌이 크지 않다면 금융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전쟁의 규모과 지속성에 따라 금융시장 영향이 차별화될 수 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50년만의 침공이라는 점에서 1차 오일쇼크를 유발한 4차 중동전쟁과 비교되는데, 이때 유일하게 전쟁 발생 이후 주가 추세가 전환된 바 있다"면서 "사우디와 6개 아랍 석유 수출국이 이스라엘 지지 국가들에 원유수출을 중단해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금은 미국이 산유국이고 오일쇼크 때 없었던 전략비축유가 마련된 점이 과거와 다른 부분이라고 짚었다.
국제유가는 전쟁 직전 80달러 초반까지 하락한 이후 전쟁 불확실성에 다시 반등했다.
또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사우디가 내년 원유 증산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미국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수교가 점진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전쟁 배후로 지목되는 이란 입장에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가 속편할리 없었다. 따라서 하마스의 목표가 이스라엘을 자극해 사우디까지 협상에 응할 수 없게 하는 것이라는 평가 등이 나오는 중이다.
전쟁과 관련한 금융시장의 핵심은 유가 흐름이다. 유가 움직임이 향후 물가나 경기 등에 미칠 영향 등에 따라 금융시장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황 연구원은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에너지 가격 안정에 힘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며 "이번 전쟁으로 이란과 합의를 통한 유가 안정 카드도 제거되는 셈"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5월 이후 사우디 산유량이 약 150만 b/d 감소하는 동안 이란에서 50만 b/d 증산되며 사우디 감산효과를 일부 상쇄해줬다. 유가가 근원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 기대를 자극하기 어렵다고 보지만, 전쟁 확산시 당장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채권시장의 한 딜러는 "이번 전쟁이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면 채권시장에 롱이 될 수 있으며, 그게 아니라면 숏이지 않을까 싶다. 예단하기 만만치 않은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딜러는 "전쟁은 당장은 안전자산선호로 작용하겠지만, 장기화되면 유가 급등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