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1-16 (토)

(장태민 칼럼) 안개 낀 투자시계

  • 입력 2023-02-28 14:5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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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미국 PCE 데이터

자료: 미국 PCE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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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요. 그래서 어느 방향인지 몰라요. 그러면 그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 그 다음에 갈지 말아야 할지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난 23일 금통위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했던 말이다. 금리 정책의 방향성과 관련해 '불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 중앙은행 총재가 구사했던 레토릭이다.

그리고 이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왔다.

금융시장 일각에선 한국 경제 고유의 한계를 거론하면서 한국-미국 통화정책의 디커플링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사정을 글로벌 경제 흐름의 선행지표격인 수출중심 국가 한국이 무시하긴 쉽지 않다.

■ 안개 낀 주식시장

2023년 초 국내 주식시장은 랠리를 벌였다. 대다수의 예상을 어긋난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은 2022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하게 올린 데 따른 경기 침체 등을 염려했다. 하지만 새해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연말의 충고는 빈말이 되는 듯했다.

1월에 주가가 10% 가까이 뛸 때 이를 주도한 세력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6.4조원 가량을 대거 순매수하면서 한국 주가를 끌어올렸다.

1월 초순 2200선 사수 여부를 고민했던 주식시장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에 1차 고지 2500선이 다가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고지 앞에서 막힌 뒤 1월 마지막 2거래일 동안 주가는 6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그런 뒤 2월 초순 들어 재차 2,500선에 욕심을 부렸지만 또 다시 막혔다.

2월 초순의 고점 이후 주식시장은 연준 통화 긴축 재강화 가능성에 번번히 상승세가 꺾이고 말았다. 월말 시즌인 27일엔 장중 2,400선을 내주는 등 비틀거렸다.

다만 2월 한 달간 흐름은 결과적으로 보합에 가까워 연초 주식시장 기대감이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더 달려나가고 싶었던 주식시장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연준이다.

파월이 1월말, 2월초 FOMC를 거치면서 '디스인플레이션 시대'를 선언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선언 이후 디스인플레이션 기대감은 약화되고 말았다.

예상을 웃도는 고용지표를 필두로 CPI, PPI, PCE물가 등 각종 물가지표들이 통화긴축 전망을 강화시켰다. 결국 연준 최종금리에 대한 전망은 5%대 초반에서 5%대 중반으로 올라가면서 주식투자자들의 기대감을 꺾었다.

양호한 고용시장이나 물가둔화의 한계엔 노동시장의 '큰 구조 변화'가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냈다.

예컨대 미국에선 '영원히 노동시장을 떠나버린 사람들', '트럼프가 쳐놓은 거대한 이민 방지용 철벽' 등이 노동 공급 구조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적지 않다.

아무튼 1월 랠리와 한국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 하향 속에 너무 비싸져 버린 한국 주식시장의 부담에 연준 긴축 재강화 전망이 맞물려 투자자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다.

한국 시장의 PER이 13배 내외를 오르내릴 정도로 비싸진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더 올리겠다는 경고문을 연일 발송하자 사람들은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고용지표, 물가지표 등을 1,2번 더 보면서 안개를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 안개 낀 채권시장

채권시장은 1월 가격 급등분을 2월에 고스란히 뱉어냈다.

연준 긴축 우려에도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잘 버텼으나, 채권시장은 연준 긴축 강화 가능성에 신경이 곤두섰다.

주식처럼 채권도 1월에 예상을 웃도는 랠리 장세를 이어갔다.

급기야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마저 뚫고 내려가는 과격한 강세장이 이어지자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은 강세를 합리화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축해야 했다.

앞으로 국고채 금리가 오르더라도 기준금리가 상단을 형성해 막아줄 것이란 기대감을 퍼뜨렸다.

하지만 미국 고용지표를 필두로 각종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잘 나온 데다 물가지표가 재반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결국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장기간 밑도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전망이 강화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고채 금리들은 3.7% 내외로 급등하면서 '정상화'되고 말았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정상화된 뒤에도 미국 재료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와중에 일부에선 이제 금리가 조금만 더 오르면 마음 편하게 저가매수할 수 있을 것이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하기만 손놀림이 자유롭지 않다.

채권시장도 주식시장처럼 안개를 좀 걷어낼 필요가 커졌다.

■ 증권시장의 적, 환율 오름세

한국 입장에서 연준 긴축 재강화가 무서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환율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달러/원 환율은 2월 2일 1,220.3원까지 하락하면서 '어쩌면' 1,200원 빅피겨를 깰 수 있다는 전망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전망이 한층 고조된 시점 상황이 돌변하고 말았다.

연준 긴축 전망이 강화되자 환율은 지속적으로 올라 20일엔 1,300원을 넘겼으며, 27일엔 하루만에 18.2원이 튀며 1,320원까지 넘겨버렸다.

이날은 달러인덱스 하락과 뉴욕 NDF 달러/원 하락 등으로 떨어지던 환율도 장중 하락의 한계를 노출했다. 달러지수 반등, 위안화 강세폭 축소, 외국인 주식 매도 두려움 등이 엉켜 전날 환율 급등분을 좀 덜어내는 일도 속 편하지 않다.

2월 초순만 하더라도 1월의 연장선에서 한국 주식을 담던 외국인은 이달 중순 이후 주식 매도 강도를 높여갔다.

2월의 전반전 10거래일 동안 외국인은 8일을 순매수했지만, 2월 후반전 10거래일 동안엔 7일 동안 순매도 중이다. 환율 상승과 외국인 주식 매도는 서로 맞물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채권 역시 환율이 두렵긴 마찬가지다.

이날은 장중 달러/원 환율이 반락에 한계를 보이자 채권가격이 낙폭을 확대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의 불쾌한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증권사의 한 채권중개인은 이렇게 논평했다.

"가격이 반등에 실패한 후 오히려 낙폭을 확대하는 모습이 지난해 엄혹했던 가을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 미국 지표가 망쳐버린 랠리 분위기...금융당국, 변동성주의보 발령하며 안정 역할 다짐

이달 연준의 긴축 강화 모드가 재작동하면서 금융당국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방기선 기재차관은 '외환건전성협의회'를 연 뒤 "연준의 긴축 장기화 우려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차관은 "러·우 전쟁, 중국 리오프닝 등 국제 경제·정치 상황의 변화가 올 한해 우리 경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글로벌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국내 외환·금융시장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외화자금 유출입 모니터링, 금융기관 외환건전성 감독 등에 있어 관계기관들이 긴밀히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재차관은 한은, 금융위, 금감원 관계자들을 불러모은 뒤 "우리는 향후 시장변동성이 더욱 확대되거나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금융회사의 외환부문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고 충분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지속적으로 지도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외화자금 상황이나 외국인 자금유출에 대해 과도한(?) 오해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국내은행의 2월 외화LCR은 132% 수준으로 규제비율(80%)을 큰 폭 상회하는 데다 은행·증권·보험사에 대한 위기 상황 분석 결과 충분한 외화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알렸다.

최근 해외 공공기관의 채권투자자금 순유출과 관련해선 "일부 공공기관의 투자여력 약화, 차익거래유인 축소 등에 주로 기인했다. 외인 채권 자금 움직임이 과도하게 해석돼 변동성을 더욱 확대시키지 않도록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시 적기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 한국물도 모두 조심해야 하는 구간 속으로

2월 미국 경제지표의 예상 밖 선전에서 비롯된 금융시장 불안감은 투자자들에게 '안개가 걷힐 때까지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키웠다.

이럴 때는 아웃복서의 심정으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강화됐다.

금융바닥의 한 증권 매매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갑자기 물가, 통화정책, 경기 모든 게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경기지표만 하더라도 하드 지표는 서프라이즈, 소프트 지표는 침체의 기운을 내뿜는 등 판단이 어렵습니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다시 극대화됐습니다."

연초 주요국 금리인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는 분위기 속에 예상을 웃도는 주식, 채권 랠리장이 나타났지만, 지금은 추세라고 생각했던 길 앞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고 평가했다.

한은 총재도, 금융시장의 오래된 증권 매매자도 지금은 안개가 걷힌 뒤 새로운 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연준의 금리 인상 등을 감안해 확실한 추세가 나타날 때까지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면서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는 스탠스가 필요합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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