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달러는 엔화에 대해 25년래 최고, 유로화에 대해선 20년래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와 유로의 가치가 이제 동일선상(1:1)에 서자 이제 미국과 유럽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대로 해결하지 못한 물가 문제 등이 커 이 역시 쉽지 않다.
패러티.
달러화와 유로화의 가치가 같은 '등가'로 수렴하는 현상을 이렇게 부른다. 유로화 출범 뒤 잠시 나타났던 이 현상이 다시 나타났지만 여전히 달러의 독주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원화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달러/원은 1,300원을 넘어선 뒤 이날엔 1,310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급등세를 연출했다.
■ 연준 긴축기조와 달러 독주
유로/달러 환율이 '1'을 밑돈 시기는 유로화가 출범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1월부터 2002년 11월까지였다.
최근 두 지역 통화가치가 등가로 수렴했지만 여전히 유로존의 정책적 한계로 달러가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예상이 많다.
미국이 자이언트스텝 등을 통해 기준금리를 이미 1.75%까지 높여 한국 수준까지 인상했지만 유로존은 이제 막 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하는 중이다.
미국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이언트스텝을 예고한 상황이지만, 유로존에선 오히려 이탈리아 등 남유럽국의 어려움이 회자되는 실정이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기 상황도 이를 지지해 준다. 예상을 웃돈 고용지표 등에서 타이트한 노동 환경과 상대적으로 괜찮은 경기 흐름도 확인했다.
대신 조만간 발표될 6월 CPI는 5월 수준(전년비 8.6%)을 약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후반부엔 유로존의 정책 정상화 가시화로 달러 독주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달러와 유로의 차별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도 이런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년 후 3개월 OIS 스왑금리를 비교해 보면 미국은 2.64%, 유로존은 1.69%"라며 "이는 2년 후에도 유로존의 정책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스왑시장이나 선물시장에 반영된 연방기금금리의 1년 후 FFR은 3.44%인 반면 1년 후 유로존 정책금리 전망은 1.29%로 그 차이가 상당하다.
■ 경기역행통화의 운명과 달러의 독주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린다고 무조건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은 정책금리를 1%에서 무려 5.25%까지 17번이나 인상한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 지역의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달러가 강세를 보였을 법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엔 달러 약세(유로화 강세)가 돋보였다.
이는 글로벌 경기 상황 호전 때문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열심히 글로벌 경제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는 안전자산 대접을 받기 때문에 달러는 글로벌 경기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 각종 경제 위기 때는 달러 수요가 강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 돈은 글로벌 위기시에 각광받는 안전자산이다. 즉 글로벌 경기의 역행 통화인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더해 글로벌 경기의 하강 전망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달러 강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 달러 독주, 정치적 해결점 모색도 쉽지 않아
미국 뿐만 아니라 유로존도 높은 물가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고물가는 유로존의 맹주이자 이 지역 제조업을 이끌고 있는 독일 경기에까지 부담을 주고 있다.
재정이 좋지 않은 남유럽 쪽이 금리 정상화를 견딜 만한 체력이 있느냐는 의구심이 지속되는 가운데 독일까지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결국 유로존 금리인상 사이클의 한계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져 달러 독주를 더욱 부추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로존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고물가 때문에 경기 우려가 재차 부각되면서 미국에 못 미치는 통화긴축이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유로화는 약세 압력을 받으면서 다시 지역의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악순환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
이승훈 연구원은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강달러를 필요로 한다"며 "만약 강달러 완화를 위한 공조 개입이 나온다면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확신이 들 때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강달러 추세 전환 타진에 있어서는 공조 개입보다 미국 인플레이션 정점 통과와 연준의 금리인상폭 축소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라며 "과거 2002년 11월 유로/달러가 다시 1.00을 상회하기 시작한 계기도 IT버블 이후 더블딥을 우려한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 달러 독주 속 달러/원 환율 고공행진...'빅스텝 등 긴축강화 당위성 부여' vs '지나친 확대 해석 경계'
글로벌 달러 강세 국면이 이어지다 보니 원화는 1,310원을 훌쩍 넘어 고공행진 중이다. 이날 달러/원은 장중 10원 넘게 급등해 1,315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달러/원은 장중 1,316원대를 기록하면서 2009년 4월 30일의 장중 기록 1,325원 이후 13년래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간밤 달러인덱스가 미국의 강한 긴축 전망, 중국발 코로나 재확산 우려 등을 재료로 삼아 1.2%나 급등한 영향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로존의 에너지 우려도 제기된다.
달러인덱스가 108을 넘어선 뒤 달러/원이 어느 수준까지 오를지도 주목 받고 있다. 또 전통적으로 금융시장 등에선 1,300원대 환율과 위기 상황을 결부시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진단들도 적지 않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1,300원대 레벨에서는 유의미한 저항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1,350원까지는 상단이 열려 있다는 것이 외환시장의 중론"이라고 평가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대외요인에다 국내적으로도 무역수지 적자, 외환보유액 감소 등이 나타나면서 달러/원이 1,300원대 중반까지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면서 "오늘 환율이 1,300원을 넘어 거침없이 오르는데, 결국 당국이 개입하더라도 지금의 흐름을 꺾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달러 독주 시대와 맞물린 달러/원 환율 고공행진은 통화당국의 빅스텝 대응 가능성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환율 고공행진은 금리의 적, 즉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또 통화당국이 미적거린다는 인식을 줄 경우 달러 고공행진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미국이 기준금리 75bp 연속 인상을 예고했다. 당분간 국내 물가는 6%를 넘어 더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시장은 50bp 인상을 각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25bp 인상에 그치면 환율 1,400원 용인 시그널처럼 비춰져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위기상 이번 회의에선 25bp 인상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가 급락 등 자산시장 부담을 감안할 때 일단 연속 빅스텝 보다는 다음달 인상폭은 25bp에 그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미국 달러가 독주하는 시대에 마치 고환율을 위기의 징조로 몰아가거나, 통화긴축 강화요인으로만 보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도 보인다.
다른 딜러는 "지금 원화만 (달러에 대해) 약한 게 아니지 않느냐. 고환율과 강도높은 금리인상을 지나치게 결부시켜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료: 메리츠증권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달러와 유로의 Parity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