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10-05 (토)

(장태민 칼럼) 서울의대 휴학 승인

  • 입력 2024-10-04 15:5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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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주호 교육부 장관, 출처: 교육부

사진: 이주호 교육부 장관, 출처: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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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달 30일 서울대 의과대학이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을 승인했다.

이는 정부의 휴학 승인 불허 방침에 반하는 결정이었다.

서울 의대 교수진은 그러나 제자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휴학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그러나 현장감사를 통해 엄중문책한다는 방침이다.

■ 먼저 치고나간 서울대...휴학 승인, 어쩔 수 없는 일

서울 의대는 정상적인 의료 교육을 실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휴학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반발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간 의과대학들의 의대생 휴학과 유급 불가 방침을 고수해왔으며, 서울대에 대해선 '잘못된 조치'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교육부는 10월 들어서도 "의과대학은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교육시키고 성장시켜야 할 본연의 책무가 있다"고 했다.

교육부 말대로 의과대학은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잘못된 조치가 정상적인 의료인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그간 제대로 배우지 않은 학생을 진급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2학년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3학년이 되고, 3학년 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4학년이 돼도 좋다는 건 의대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있을 수 없다.

이는 머리가 웬만큼 나빠도 말이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의 승리'에만 집착하는 교육부 정책가들은 전혀 교육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안 배워도 되고, 교육 난이도 낮춰도 문제없다는 이상한 교육부

교육부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뭔가 이상하다.

한국의 교육부는 어느 새 '매우 착한' 조직이 됐다.

이번 의료 사태로 의대생들이 늘어나더라도 '더욱 질 좋은'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의대 교수가 사직을 해도, 학생들이 수업을 안해 1년씩 꿇어도 수업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업을 제대로 안 들어도 학년은 자동으로 올라가 정상적인 의사가 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한다.

대체 한국 교육부는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일까? 놀아도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지식이 머릿속에 쏙쏙 박힌다는 참신한 이론을 개발한 듯했다.

사실 올해 초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에서 수능에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을 넣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큰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일부 공과대 교수들도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어려운 미적분은 대학에서 가르치면 된다면서 정부 입장에 동조했으며, 많은 국민들 역시 '쓸데 없는 공부 좀 줄이자'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수학회 등 이공계는 이공계 대학 과목의 기초인 심화 수학이 빠지면 이과 대학 교육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반발했다.

올해 초 정부 발표 후 대한수학회는 "정부 개편안은 대학 교육을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 접근"이라며 "이공계 전공 이수를 위해 필수인 미적분Ⅱ와 기하가 출제 범위에서 제외돼 수험생의 학력 저하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과학계 쪽에선 "교육 난이도를 그렇게 낮추면 과학의 기반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 너무 나간 교육부...의대교육 평가기관 무력화 시도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는 수학 문제를 영어 교사가 평가하는 식의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

정부는 급기야 의평원(의학교육평가원)을 무력화하려고 한다.

전날(3일) 의과대 교수들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 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의대 교수 단체가 무너지는 의학교육을 볼 수 지켜만 볼 수 없어 거리 집회에 나선 것이다.

의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정부는 아예 교육을 하지 않아도, 교육과 실습 공간이 없어도, 임상 실습을 할 병원이 부족해도, 가르칠 교수가 없어도 의평원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악의 수를 두고 있다"며 "의평원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현재 한국의 의대는 교육부가 인정한 의평원으로부터 평가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의평원의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실상 의대로서 인증을 못 받는 시스템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 대규모 재난 상황이 도래했을 때는 불인증 전 1년 이상 보완기간을 주는 관련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누가보더라도 한국 의학 교육의 질을 낮추려는 시도다. 정부가 이렇게 하는 건 '정상적 의료 교육 불가능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의대 교수들은 하늘이 열린 개천절 날 서울 시내에 모여 "한국 정부가 후진국 의사를 양성하려고 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의평원은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지 견제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볼 수 있다.

의사 출신인 여당의 안철수 의원조차 "의평원 인증 평가를 무력화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습도 제대로 안 하고 의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교육부의 권한 축소를 외쳐왔다.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예산만 많이 쓰는 데다 '엉뚱한 교육제도'를 연구·발굴해 학부모와 학생들을 스트레스 주는 데만 골몰하는 이 기형적인 집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비난도 많다.

그러나 교육부가 해야할 일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대학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교육부는 의대가 날림, 부실 교육을 하도록 종용하고, 교육의 수준 저하가 '좋은 일'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과연 교육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 사회 업그레이드 시키는 진짜 전문가 인정해야 정상적인 국가

필자는 최근 넷플릭스 오락(예능)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를 재밌게 보고 있다.

이 시리즈는 재야의 요리 고수 80명이 유명한 스타 셰프 20인에게 도전한 뒤 '진짜 최고의 고수'를 가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이름 값에 따라 '백수저', '흑수저'로 서로 대결을 시키긴 하지만, 사실 흑수저로 나온 사람들도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 전문가들이다.

상층부 요리사들의 계급을 따로 세분해서 경쟁의 재미를 더했을 뿐이다.

성공한 외식 사업가 백종원과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안성재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평소 같으면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을 여경래, 최현석, 에드워드 리와 같은 유명 스타 셰프들이 경기장의 선수로 출현해 더욱 재미를 더했다.

한데 필자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작금의 의료 분쟁을 떠올렸다.

요리든, 의료든 어느 분야이든 전문가들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전문가들은 한 사회의 수준 자체를 업그레이드 시킨다. 전문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이들을 배제하고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전문가들은 심사위원석은 커녕, 선수로 참가하는 것마저 방해 받고 있다.

이주호 장관, 박민수 차관과 같은 엉터리 평가원들이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채점하고 있다면 어떤 셰프가 그 결과를 인정하겠는가.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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